- 1,400자 짧은 글 / 프로게이머 AU / 딱히 씨피 모먼트는 없지만, 제가 중독을 좋아해서 그런 느낌이 보일 수도 있습니다.
수많은 불빛과 수십 명의 시선이 단 한 사람만을 향하고 있었다. 경기장 뒤편에서 인터뷰를 진행하는 아나운서 옆에는 오늘의 주인공인, 한 선수가 있었다. 오늘 패왕 선수의 500번째 경기가 있었습니다. 소감 한 번 부탁드립니다. 서글서글 웃으며 선수 쪽을 향해 고개를 돌리는 아나운서가 뒤편을 향해 윙크했다. 그러니까, 이제 곧이라는 눈짓이겠지? 중얼거리는 김독자의 말에 그의 옆에서 팔짱을 낀 채 서 있던 한수영이 관심 없다는 듯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뭐, 그러겠지. 김독자의 시선이 한수영을 떠나, 익숙한─코치가 된 김독자가 몇 달 동안 익히 보아온─뒷모습으로 향했다. 500번째 경기라는 기록을 세울 수 있어서 좋습니다. 항상 응원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유중혁의 인사에 관객석에서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나는 유중혁이 저렇게 말하는 거 볼 때마다 신기하더라."
가만히 서서 때를 기다리던 김남운이 중얼거렸다. 그의 말에 이해했다는 듯, 한수영이 고개를 끄덕이며 긍정했다.
"신기하게 인터뷰에선 멀쩡하지."
근데, 팬 미팅 때는 또 원래 말투로 돌아가는 것도 신기하지 않아? 한수영의 말에 팀원들이 일제히 고개를 끄덕였다.
자, 그러면 마지막으로…. 아나운서의 늘어지는 말에 김독자의 옆에 서 있던 이지혜가 그의 팔뚝을 툭툭 쳤다. 신호 왔어. 아저씨, 우리 가야 해. 이지혜의 말에 김독자를 중심으로 양옆에 서 있던 이현성과 김남운 그리고 공필두도 나갈 준비를 했다. 김독자의 양손에는 하얀 생크림 케이크가 놓여있었다. 헤드셋도, 키보드도, 마우스도, 심지어 마우스 패드도 검정으로 도배되어있는, 오늘의 주인공과는 정반대의 케이크였다.
"보통 케이크는 감독이나 같은 팀 선수가 들지 않나…"
"너 감독 대행이잖아."
그러니까 네가 드는 게 맞지. 입술을 삐죽이며 볼멘소리를 내뱉는 김독자의 항의에도 한수영은 코웃음 쳤다. 사실, 오늘 경기의 단독 POG에 선정된 패왕 선수가 생일이라고 하더라고요. 아나운서의 말에 한수영은 김독자의 코트 주머니에서 라이터를 꺼내 들었다. 말은 좀 하고 꺼내. 소매치기도 아니고. 라이터를 꺼내든 한수영은 두어 번 부싯돌을 툭툭 내렸다. 몇 번의 헛손질 끝에 겨우 점화된 불꽃을 케이크의 초에 하나하나 붙이기 시작했다. 버벅대는 모습에 김독자는 피식 웃었다. 웃음소리에 한수영은 미간을 찌푸리며 라이터의 불꽃을 꺼트리고, 원래 있던 자리에 다시 집어넣었다. 그냥 버튼 같은 거 누르면 불꽃 나오는 라이터도 있던데 어르신도 아니고, 너는 뭐 이런 거만 쓰냐? 뭐어, 그냥 익숙해서 그런 거지. …나와주세요! 아나운서의 말이 끝나자, 수많은 팬이 환호성과 함께 박수를 치기 시작했다. 조금 전까지 같이 경기했던 이현성, 김남운, 이지혜, 공필두가 먼저 나서고, 그 뒤를 이어 한수영과 케이크를 든 김독자가 뒤따랐다. 유중혁은 몸을 돌려, 걸어오는 팀원들과 코치진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순간, 눈이 마주친 김독자는 머쓱한 웃음을 지었다.
자, 그러면 다 같이 불러볼까요? 아나운서의 말이 끝나자, 경기장의 수많은 팬이 한목소리로 생일 축하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팀원들은 손뼉을 치며 박자를 맞추었다. 양손에 케이크를 들고 있는 탓에 머쓱하게 유중혁 옆에 서 있던 김독자는 노래가 끝나가자 케이크를 유중혁 앞쪽으로 들이밀었다. 생일 축하합니다! 와아아! 수많은 축하 아래 유중혁은 고개를 숙여 케이크의 촛불을 불어 껐다. 촛불이 꺼지자, 우레와 같은 박수 소리가 경기장을 가득 채우며 그의 생일을 함께 축하했다. 김독자는 가까이 다가온 그에게 작게 속삭였다. 생일 축하한다.
김독자의 작은 목소리를 들은 것인지, 유중혁은 고개를 치켜들다가 잠깐 멈추고는 김독자에게 시선을 향했다. 눈이 마주치자 김독자는 씩 웃었다. 남은 경기도 서로 힘내서 우승하자.
이하, 유중혁 생일 글 치고는 김독자 비설만 쓴거같아서 따로 뺀 내용.
선수 김독자는 비운의 아이콘이라고 불렸다. 직업이 프로게이머인 만큼, 개인 기량은 상당히 좋은 편이었다. 팀에서 그가 해줘야 할 역할이 10이라면, 그 이상을 해주는 선수였다. 2군에서 콜업되던 당시, 유망주로 모든 구단에서 촉각을 세우던 선수였다. 그러나 개인의 기량과는 별개로, 팀에서 지향하는 바와 선수가 잘 맞지 않아, 우승은커녕, 플레이오프에도 진출하지 못한 채였다. 1군에서 2년의 세월이 흐르자, 그는 친정팀을 떠나기로 결심하고 상위권 팀으로 이적했다. 그렇게 팀을 이적한 김독자는 그토록 넘고 싶었던 플레이오프라는 1차 관문을 손쉽게 통과하고, 승승장구로 결승전까지 도달하였다. 그 당시 상대 팀은 현재 김독자가 감독 대행으로 있는 팀으로, 주장 유중혁을 필두로 하여, 시즌 때부터 연승가도를 달리던 무적함대인 팀이었다. 그리고 김독자는 유중혁의 1,000번째 킬이 되어버리고 말았다.
악연이라는 게 있다면, 김독자는 그것이 유중혁이라고 생각했다. 유중혁의 1,000번째 킬을 빛내는 조연이 된 후로, 김독자는 유중혁을 단 한 번도 이기지 못했다. 솔로랭크나 스크림에서는 많이 이겼지만, 그때뿐이었다. 실전 경기 때마다 김독자는 그를 단 한 번도 이기지 못했다. 그 해를 빛내는 세계 대회를 진출하기 위한 플레이오프 경기에서, 김독자의 팀은 또다시 유중혁을 상대로 패배를 적립했다. 경기 후 언론 인터뷰하던 김독자는, 그 팀을 상대로 현재까지 전패 기록이 이어지고 있는데, 같은 라인의 유중혁 선수와 상성이 좋지 않냐는 기자의 질문에 김독자는 염세를 강하게 느꼈다. 선수 김독자가 우승 경력이 없는가? 전혀 그렇지 않았다. 그저, 그때마다 아이러니하게도 유중혁이 속한 팀이 부진하다는 평을 들을 때 우승을 거머쥐었을 뿐이었다.
그저 그런 중위권 성적으로 시즌을 마무리한 김독자는 돌연 선수 생활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주변에서는 그의 마음을 돌리려 애를 썼다. 어떤 선수라도 ━심지어 유중혁마저도━ 대중과 언론에 평가받는다며, 선수 김독자로 계속하길 원했다. 좀 쉬고 싶어서요. 김독자는 그저 그렇게 대답하며, 결정을 번복하지 않았다.
일 년 후, 김독자는 해외의 어느 팀과 계약을 맺었다는 기사가 돌았다. 선수가 아닌 코치로, 그는 다시 시작했다.
상대를 분석하고, 메타를 파악하며, 챔피언 티어를 계산하며, 전술을 짜내는 것. 해외에서 팀을 우승시키고, 국내의 2군 리그를 우승시키는 등 그의 경력은 점점 쌓여갔다. 친정팀을 플레이오프에 진출시켰으나, 결국 패배하여 세계 무대로까지는 나아가지 못했다. 그 해의 세계 대회는 해외의 어느 한 팀이었다. 계약 종료를 앞둔 김독자에게 수많은 러브콜이 쇄도했다. 유기적으로 진행되는 밴픽과, 빠른 메타 파악 능력, 그리고 날카로운 분석으로 플레이오프까지 도달하게 만들었다는 이유였다. 그 가운데는 답지 않게 성적이 잘 나오지 않고 있던 유중혁이 속한 팀도 있었다. 김독자는 쓰게 웃었다. 그렇게 이기고 싶었던 대상인데, 이기기는커녕 그를 우승시키는 역할을 하게 될 판이었다. 국내외를 가리지 않은 수많은 러브콜 중에서, 김독자는 결국 유중혁이라는 슈퍼스타가 속한 팀과 계약을 맺었다.
"수많은 러브콜을 받으신 것으로 알고 있는데, 이 팀을 선택하게 된 특별한 이유가 있으실까요?"
코치로 계약을 마치고, 언론에 기사가 나가며 인터뷰하게 된 김독자는 질문을 듣고 작게 웃었다.
"제가 선수 시절 꺾지 못했던 유일한 팀이었습니다. 제가 코치로서 팀을 우승시키면 저를 증명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물론, 넘지 못한 벽이지만 동경하던 선수와 함께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습니다. 김독자의 웃음에 기자는 호기심이 어린 표정으로 되물었다. 혹시, 그 선수가 유중혁 선수인가요? 김독자는 고개를 작게 끄덕였다. 네, 맞습니다.
중독러인데 그러면 중독이라고 기입을 해야하는건가.. 그치만.. 그 흔한 포옹이나 손잡기도 안하는데.....
그래서 그냥 따로 중독이라고 기입하진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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