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te Bow Tie Hearts Blinking Blue Pointer
중혁독자 / 패러독스(가제)
전독시

24.05.21.

전지적 독자 시점 중혁독자 2차 / 이능력자 AU

 

세계가 멸망해 가는 징조에는 몇 가지가 있다고 한다. 가장 대표적으로 알려진 징조는 기후의 변화였다. 일 년의 절반이 사막과도 같은 뜨거운 더위로 땅이 메말라가고, 남은 절반 동안은 온 세상을 하얗게 물들 정도로 많은 양의 눈이 내렸다. 그것으로 끝나지 않고, 어느 날부터 몬스터가 끊임없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것들이 흘러나오는 게이트를 찾기까지 수많은 인류가 죽음을 맞았다. 인류는 그저, 그들의 시야를 피해 도망칠 뿐이었다. 인간은 이계의 생명체를 대적하지 못했다.

정녕 인간은 그저 멸망의 도래를 기다려야만 하는 것일까. 절망의 때, 평범한 사람들의 일부는 하나둘씩 이상한 능력을 사용하게 되었다. 갑자기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처럼, 밤이 지나고 태양이 뜨자 각성했다. 사람들은 희망을 품고, 그들을 신인류라 부르며 떠받들었다.

그러나, 누군가는 이렇게 말했다.

사실, 신인류야말로 멸망의 징조 중 하나일 지도 모른다고.

괴수가 사라진다면, 신인류가 곧 괴수가 될지도 모른다.라고.

 

 

패러독스(가제)

유중혁X김독자

 

 

매년 2월 15일에는 눈이 내린다. 14일에는 눈이라고는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더라도, 다음 날에는 꼭 눈이 내렸다. 물론, 눈이라 해도 흔히들 상상하는 함박눈만이 내렸다는 뜻은 아니다. 대체로 그날 내리는 눈은 비를 닮은 싸라기눈이거나 비와 함께 내리는 진눈깨비였다. 올해는 어떤 눈이려나, 잠에서 깨어난 김독자는 두어 번 느릿하게 눈을 깜박였다. 고개를 돌려 창문을 향한 시선은 아직 몽롱했다. 드넓은 설원을 채우려는 건지, 녹이려는 건지, 빗줄기와 눈이 함께 흩날렸다. 진눈깨비가 내리고 있었다.

“올해는 진눈깨비네.”

침대에서 일어난 김독자는 기지개를 켜며, 옷장을 향해 시선을 옮겼다. 어쩌다 보니 그를 상징하는 옷이 되어버린 흰색 코트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김독자의 시선이 다시금 창문을 향했다. 꿈속에서 ‘읽은’ 색과는 정반대의 색이다. 가만히 팔짱을 끼고 눈을 감은 김독자는 꿈을 복기했다.

“어떤 사람일까….”

문장을 읽는 건, 어렵지 않았다. 그러나 그것을 해석하고 상상하는 건 다른 문제였다. <김독자 컴퍼니>의 예언자는, 한숨을 내쉬었다.

 

 

-

 

 

신인류가 처음으로 나타난, 초창기에 각성하여 신인류가 된 김독자는 서쪽을 지키는 하나의 기둥이었다. 그렇게 한반도의 서쪽을 맡은 김독자는, 그가 배정받은 기지를 집이라고 불렀다. 평생 이곳에서 살아야 하는데 집이랑 다를 건 없지 않냐는 웃지 못할 이유였다. 그를 시작으로, 정부에서는 비정기적으로 각성한 신인류들을 서쪽을 포함한 동쪽, 북쪽, 남쪽으로 배치했다. 김독자를 포함한 네 개의 기둥으로 하여, 괴수의 침공으로부터 사람들을 지키게끔 했다.

처음에는 서쪽, 서쪽 집단 등으로 불리던 그들은 리더의 주장으로 <김독자 컴퍼니>라는 이름을 가지게 되었다. 리더인 김독자는 미래를 볼 수 있는 흔치 않은 이능력을 가졌다. 그러나 그는 아주 짧은 미래만을 볼 수 있었다. 정확하게는 아주 짧은 미래를 ‘읽는’ 능력이었다. 꿈속에서 미래가 적힌 책을 읽는 탓인지는 몰라도, 적혀있는 문장들은 항상 명확한 것은 아니었다. 그래도 덕분에 다른 지역에 비하면 희생이 적은 편이었지만, 아예 없는 것도 아니었다. 김독자를 중심으로 <김독자 컴퍼니>는 서쪽을 무사히 지켜내고 있었다.

대체로 김독자가 ‘읽는’ 미래는 제한적이었고, 그의 마음대로 조절하거나 선택할 수는 없었다. 매일매일 미래를 읽을 수 있는 것도 아니었고, 무조건 큰 사건만을 읽는 것도 아니었다. 몬스터 웨이브가 집 바로 앞에 나타나는 큰 사건의 미래도 있었지만, 그가 걸어가다가 돌에 걸려 넘어지는 자잘한 사건의 미래가 적혀있을 때도 있기 때문이었다.

 

멍하니 창밖만을 주시하던 김독자의 눈이 번뜩였다. 흩날리는 눈발 사이로 침입자가 나타났다. 드넓고 흰 설원을 검게 물든 하나의 점처럼 보이는 침입자였다. 김독자의 몽롱한 눈빛이 설원의 침입자에 초점을 되찾았다. 그의 입꼬리가 위로 솟았다. 김독자는 창문에 이마를 기대었다. 그의 시선은 이곳을 향해 다가오는 검은 인형에 사로잡혔다. 멀리서도 보이는, 흩날리는 검은색의 긴 코트 자락은 김독자가 꿈에서 ‘읽은’ 그대로였다.

 

2월 15일, 김독자의 생일에는 언제나 눈이 내린다. 이번 신입은 그의 생일에 <김독자 컴퍼니>에 입사한다. 꼭 생일선물 같네. 김독자는 작게 중얼거리며 창문에서 시선을 떼었다. 그는 그의 마스코트를 꺼내 입고, 현관을 향했다. 가지런히 놓여있는 신발을 신고, 옆에 놓인 검은색의 긴 우산을 꺼내 들었다. 신입을 마중하러 가야 할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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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게이머로서 유명세를 떨치던 스물여덟의 유중혁은 어느 날 갑자기 백수가 되어버렸다. 게이트가 나타나며 인류의 유희가 사라지자, 유중혁은 자연스레 직업을 잃어버렸다. 어떻게 해야 할까, 고민할 시간은 그에게 주어지지 않았다. 그는 사지 건장한 대한민국의 남성으로서, 센터로 차출당했다. 차출당한 유중혁이 맡은 일은 전방에서 보내져 오는 괴수의 부산물을 센터 내에서 나르는 일이었다. A-1! 그거는 저쪽으로! 유중혁이 미는 수레를 발견한 한 연구원이 소리쳤다. 유중혁은 고개를 끄덕이며 가리키는 쪽으로 수레를 밀었다.

 

“야, 오늘 신인류 한 명이 죽었나 봐. 윗선이 시끄러워.”

“뭐? 어쩌다가?”

유중혁이 속한 그룹에서 입이 가볍기로 유명한 남자가 속보라며 소리쳤다. 그 이야기를 들은 그룹원들은 하나같이 혀를 찼다. 팔짱을 낀 채 앉아 눈을 감고 있던 유중혁의 귓가에도 그들의 대화가 닿았다. 야, 그걸 알면 내가 여기 없지! 그 말도 맞네, 아~ 그래도 신인류가 되면 좋을 텐데. 이런 곳에서 잡일 같은 거 안 해도 되잖아. 잘못하면 너도 죽는다고? 그들은 낄낄거리며 자리를 떠났다. 그들의 대화가 안 들릴 정도로 멀어지자, 유중혁은 감고 있던 눈을 가만히 떴다. 신인류…. 유중혁은 고개를 돌려 창가를 바라보았다. 유리창 너머로 함박눈이 펑펑 내리고 있었다. 폭설 탓에 발이 묶여 부산물이 센터까지 도달하지 못했다며 갑작스럽게 휴가를 받은 차였다. 유중혁은 검지로 팔뚝을 툭툭 치며 잡념을 몰아내고는 다시 눈을 감았다. 눈이 그치면, 시체를 나르게 되겠군.

 

여느 때와 같이 눈을 뜬 유중혁은 느릿하게 몸을 일으켰다. 이상하게 묵직한 몸이 피로감을 호소해, 그는 고개를 좌우로 돌리며 뻐근함을 풀어내었다. 어제, 폭설 탓에 밀린 부산물들이 눈이 그치자마자 센터에 몰려들어, 평소보다 많은 양의 부산물을 나른 탓이었다. 사이드 테이블을 짚고 몸을 일으키려던 그는 갑자기 푹 꺼지는 테이블과 동시에 요란한 소리를 내며 엎어졌다. 다행히 테이블을 짚은 손으로 바닥을 짚은 탓에, 크게 다치진 않았다. 놀란 듯 커진 두 눈이 사위를 살폈다. 볼썽사납게 박살 나버린 테이블과 테이블 위에 놓인 스마트폰이 떨어져 저 멀리 책상 밑에 엎어져 있었다. 무슨 일이 벌어진 거지? 유중혁의 머릿속에 상념이 스쳐 지나가기도 전에 누군가가 문을 쾅쾅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유중혁 씨! 무슨 일인가요? 엄청나게 큰 소리가 나던데!

 

“유중혁 씨는 아무래도 신체 강화 계열 능력으로 각성한 듯싶군요.”

테이블을 박살 낸 건 별것도 아니었다. 크고 무겁고 단단한 괴수의 부산물을 옮기기 위해, 센터 내의 수레들은 튼튼하고 무거웠다. 모터가 없다면, 성인 남성 혼자서라도 나르기 힘들 정도의 강도와 무게를 자랑했다. 그리고 유중혁은 출근하자마자 그 수레를 부숴버리고 말았다. 평소처럼 수레의 모터를 작동시키고 밀자마자 수레는 빠른 속도로 눈앞의 벽에 처박혔다. 그 길로 유중혁은 여러 연구원의 관리하에 수많은 검사와 상담을 당해야 했다. 센터에서 일해온 유중혁도 이미 알고는 있었지만, 센터의 일 처리는 굉장히 신속했다.

“각성, 이라고.”

“축하해요. 당신은 신인류가 되었어요.”

하급 직원에 불과한 유중혁이었다면 절대 만나지도 못할 높은 위치의 사람과 대면하게 된 그는 헛웃음을 지었다. 그의 그런 반응을 눈치채지 못한 것인지, 혹은 관심이 없는 것인지, 상대의 말투는 여전히 사무적이었다. 유중혁의 인적 사항이 적힌 종이를 훑던 상대는 나직하게 말했다.

“그런고로, 당신은 내일부터 서쪽 부대에 배치될 예정입니다.”

그쪽 관리자에게는 연락을 취해놓겠습니다. 유중혁의 의사는 고려하지 않는 태도에 유중혁의 눈이 짙게 가라앉았다. 게이트가 나타난 후, 센터에서 쭉 일해온 유중혁은 배치된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알고 있었다. 한 번 배치되면, 살아서는 절대 후방으로 돌아올 수 없다. 신인류라는 명목으로, 인류를, 세상을 지키기 위해 총알받이가 될 뿐이다. 필요한 보급품은 오늘 전부 지급될 겁니다. 필요한 것이 있다면, 편하게 요청하시지요. 씩 웃으며 그는 자세를 바로 했다. 신인류는, 아주 중요한 전력이니까요.

 

유중혁이 센터를 떠나는 날, 어두컴컴한 하늘에서는 비도 눈도 아닌 것이 내렸다. 중간까지 동행한 자의 말에 따르면, 진눈깨비라고 한다. 우산, 정말 필요 없으세요? 헤어지기 직전까지 묻던 말에 고개를 저었다. 눈보다는 비 같은 거라, 계속 맞으면 찝찝하실 텐데…. 당사자보다 더 걱정스러워하는 오지랖에도 유중혁은 아랑곳하지 않고 지나쳐 걸어갔다.

“다음에 뵐 수 있다면 뵈어요!”

엄청난 친화력을 자랑하는 수송꾼은 손을 흔들며 인사를 건네었다. 그는 말도 많고, 오지랖도 넓었다. 그의 말에 따르면, 매번 여기서 부산물들을 받아 옮겼다고 한다. 오늘은 예정된 업무가 없어서 안내자 역할을 맡았다고 했다. 그리고 조금만 더 가면 서쪽 건물이 보일 거라던 수송꾼의 말대로, 흩날리는 진눈깨비 사이로 낮지도 높지도 않은 건물이 유중혁의 시야에 닿았다. 넓게 펼쳐진 설원 사이, 하늘에서 떨어진 것처럼 놓여있는 건물이 이질적이었다. 눈을 푹푹 밟으며 건물에 가까워지자, 유중혁의 시야에 새로운 것이 잡혔다.

 

어둑어둑한 하늘, 새하얀 설원, 3층 정도 높이의 건물, 그 앞에 검은 우산, 그리고 눈에 동화된 듯한 백색의 코트가 흩날리고 있었다. 우산을 들고 있는 남자는 흐리게 웃고 있었다. 어떠한 감정도 읽기 힘든 웃음이었다. 새하얀 설원에서 눈보라 속에 사라질 것만 같다. 제설작업이 된 길을 따라, 검은색 우산을 이정표 삼아 걸어가던 유중혁의 보폭이 점차 줄어들었다. 유중혁보다 키가 살짝 작은 남자는 들고 있던 우산을 치켜들어 눈을 마주했다. 그리고 그가 한 걸음 두 걸음 발걸음을 내딛자, 두 사람의 거리가 더욱 좁혀졌다. 안녕. 미소를 띤 남자는 쥐고 있던 우산을 살짝 들어 앞으로 들이밀었다. 유중혁의 머리 위로 그늘이 다가왔다. 그리운 듯한 그의 표정에 유중혁은 미간을 살풋 찌푸렸다.

“널 기다리고 있었어. 유중혁.”

 

 

 

 

「엊그제 내린 눈으로 세상은 온통 새하얀 설원이었다. 드넓게 펼쳐진 설원을 녹여버리려는 듯, 진눈깨비가 흩날렸다. 진눈깨비와 함께 바람에 흩날리는 검은색 코트 자락이 꼭 흰 종이의 점 같았다. 설원을 헤치고 나타난 검은 침입자는 <김독자 컴퍼니>에 도달했다. 무저갱의 심연을 바라보면 꼭 저런 색일 터였다. 모든 빛을 흡수하는 검은 남자였다. 길게 뻗어 날카롭고 뚜렷한 눈매 아래, 심연에 빠져들 것만 같이 검은 눈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었다.」

 


배포본 낼까 하고 썼는데 결국 완결을 정하지 못해서 미완성인 채로 업로드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