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즈! 답례제 이전 겨울 즈음 시점의 날조
* 2025. 10. 30. 생일 기념 짧은 글
* 뮤지컬 ㅍㄹㅋㅅㅌㅇ 스포일러는 아니지만(재차 확인하긴 했습니다...) 해당 작품을 보고 난 후 떠올린 글이라 혹시 몰라 적어둡니다.
* 혹시라도 본문 가독성이 너무 별로다 싶으면 연락 부탁드려요!
* 아래는 작업하면서 들었던 곡 입니다.
https://youtu.be/pzt6SmvGpXk?si=wqwE-bvcDKgzkomj
* 후기는 이쪽 익명함 혹은 트위터로 부탁드려요!
https://spin-spin.com/pause_sign
발을 적시는 차가운 바닷물과 겨루려는 듯, 체온을 앗아가려 휘몰아치는 바닷바람이 거셌다. 너울너울 힘을 다한 파도가 해변가를 살며시 적셨다. 새하얀 해변가에 차곡차곡 발자국을 남기며 걸어가던 카게히라는 점차 가까워져 오는 파도에 쭈그려 앉았다. 다가오는 파도에 맞춰 카게히라가 손을 뻗자, 투명한 바닷물이 그의 손가락 사이사이를 적시고 다시 뒷걸음질 쳤다. 차가워. 그는 그렇게 말하면서도 여전히 그대로 주저앉은 채였다. 찰박찰박, 얕은 파도를 이리저리 헤치는 소리가 적막을 깼다. 동그란 뒤통수를 바라보던 이츠키는 카게히라의 손이 차가운 바닷물 탓에 발갛게 물든 모습을 보고 미간을 찌푸렸다. 저 편리한 머리는 감기로 고생했던 기억을 다 잊어버린 게 분명했다.
“그만 일어나. 또다시 감기로 고생하고 싶은 건 아니겠지.”
그렇네. 이츠키의 말에도 카게히라는 여전히 손을 파도에 맡긴 채였다. 차가운 바닷물과 시린 바닷바람에 이제는 붉게 물든 손이 위험해 보일 지경이었다. 이츠키는 카게히라를 향해 한 걸음 움직였다. 아무리 둔감하더라도 동상에 걸리는 건 다른 문제였다. 이츠키는 그를 향해 손을 뻗었다. 젖어있는 손이 아닌 다른 손을 붙잡고 힘을 주어 그를 일으켰다. 이츠키의 주도에 미련 따위 없다는 듯 카게히라는 곧장 몸을 일으켰다. 이츠키의 시야에 덜덜 떨리는 손이 담겼다. 헤실헤실 웃는 모습을 보아하니, 본인은 전혀 자각하지 못하는 듯했다. 이츠키는 임시방편으로 손수건을 건네었다.
“자, 이걸로 손을 감싸거라.”
“내는 괜찮다?”
고개를 저으며 거절하는 모습에도 이츠키는 문제의 손을 거세게 잡아 올렸다. 예상보다 더 낮은 체온에 이츠키는 미간을 절로 찌푸렸다. 안 하는 것보다는 낫겠지. 손수건으로 손을 덮은 이츠키는 고갯짓으로 카게히라의 반대편 손을 가리켰다. 카게히라는 머뭇거리다가 이내 제 손으로 손수건에 감싸인 손을 붙잡았다.
고개를 숙이자 매섭게 불어오는 바닷바람에 머리카락들이 그의 얼굴을 감싸듯 휘날렸다. 어지럽고 무질서하게 바람에 맞추어 흩날리는 머리카락이 꼭 무대 위에서 춤을 추는 너 같다고. 이츠키는 둥그런 머리를 가만히 내려다보았다. 이츠키의 시선을 느낀 건지, 아니면 그저 우연이었던 건지. 카게히라가 고개를 치켜들었다. 구김 없이 웃는 모습이 천진난만했다. 이츠키는 말없이 그 얼굴을 직시했다. 인형은, 그렇게 웃을 수 없어.
겨울 바다
있나, 스승님. 스승님은 북극이 어떤 곳인지 아나? 속삭이듯 귓가에 닿는 목소리에 이츠키는 천천히 눈꺼풀을 들어 올렸다. 목소리가 들려온 쪽으로 살짝 고개를 돌리자, 건너편 차창 너머에서 시선을 떼지 못하는 카게히라의 모습이 보였다.
“자기 자신이 인간인 것조차 잊어버린다.”
방금 전 두 사람이 같이 관람한 극에서 나오는 말이었다. 정말 그런 곳이 있긴 하나? 웅얼거림에 가까운 작은 목소리에 이츠키는 코웃음을 쳤다. 그건 비유잖아.
이츠키의 핀잔에 카게히라는 고개를 좌우로 저었다. 내도 그게 비유였다는 건 안데이. 카게히라는 설렁설렁 몸을 흔들었다. 다행히 한산한 시간이라 카게히라의 옆자리가 비어 있었기에 이츠키는 그의 행동을 저지하지 않았다.
“북극에 가본 적은 없지만, 왜인지 그 대사를 들었을 때 정말 그럴 거 같다고 느껴졌데이.”
“ 흐음….”
그다지 흥미 없다는 듯한 어투에도 카게히라는 괘념치 않은 듯 웃으며 다리를 앞뒤로 흔들었다. 으음, 스승님은 안그랬나? 머쓱한 듯 머리를 긁적이는 카게히라는 어리숙해보였다. 차창 너머 도시의 불빛으로 물든 곤란한 얼굴이 꼭 비극의 주인공 같았다. 이츠키는 무심코 다듬어지지 않은 말을 입 밖으로 내뱉었다. 그렇다면, 북극에 가볼까.
말은 그렇게 했지만, 정말 북극에 간다는 건 아니었다. 북극은 아니지만, 이 시기에 북극과 비슷한 광경을 볼 수 있는 곳이 다행히 일본 내에 있었다. 물론 그렇긴 해도 꽤 거리가 있는 곳이었다. 그래도 진짜 북극에 비하면야 아주 가까운 편이니 다행이라면 다행이었다. 북극에 가자고 무심결에 말을 꺼낸 탓에 오게 된 곳이었지만, 사실 이츠키에게도 미지의 장소였다. 그곳은 차디찬 겨울 바다 위를, 흘러 내려온 유빙이 가득 메우고 있다고 했다. 그래서인지 그 경이로운 광경은 정말 북극과도 같은 곳이라 했다. 그 곳에 다다른 이츠키 또한 그렇게 느꼈다.
머나먼 바다와 하늘의 경계선에서부터 지면과 가까운 곳까지, 짙은 푸른색의 바다를 가득 메운 크고 작은 하얀 유빙들로 가득했다. 그것들은 거센 바람과 일렁이는 파도에도 미동조차 없었다. 꼭 눈으로 뒤덮힌 대지 같은 것이, 그야말로 절경이었다. 아마 이런 광경은 흔히 볼 수 없을 테지. 이츠키는 조심스레 옷깃을 다시 여몄다. 절경이긴 했지만, 바다에서부터 불어오는 겨울 바람은 사나워 오래 보기엔 힘들 듯했다. 카게히라는 괜찮은 건가. 그는 동행인을 향해 천천히 옆을 향했다.
밤이 빨리 찾아오는 곳이라고 했다. 분명 해가 지기엔 이른 시간이었지만, 벌써 지평선 너머로 붉은 태양이 노을빛을 퍼뜨리며 존재감을 드러냈다. 저 너머 바다와 하늘이 맞닿는 지평선을 바라보는 금색의 눈동자가 노을빛으로 붉게 물들었다. 스승님. 그의 엷은 미소가 어쩐지 쓸쓸해 보였다. 내는 그 사람을 이해할 수 있을 거 같다. 카게히라는 이츠키를 향해 고개를 돌리며 빙긋 웃었다. 둥글게 휘어진 눈매는 왜인지 후련해 보이기도 했다.
”인간이 싫었던 거겠제. 그러니께 인간인 걸 잊고 싶었던 거다.“
나지막하게 속삭이듯 들려오는 목소리 사이로 파도치는 소리는 유난히 선명했다. 이츠키는 가만히 입을 달싹이다가 이내 꾹 다물었다. 무어라 말해야 할지 모르겠다. 이츠키는 황급히 고개를 돌렸다. 시야를 가득 채운 건 여전히 바다 위를 유람하는 수많은 유빙뿐이었다. 그건 꼭, 네가 그렇다고 말하는 것 같네. 결국 목구멍까지 올라온 말은 입 밖으로 나가지 못했다.
두 사람이 이곳에 도착한 지 꽤 시간이 흘렀음에도 유빙은 변함없었다. 여전히 빽빽하게 바다를 가리고 있었고, 여전히 자신의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스승님? 조심스러운 카게히라의 부름에 이츠키는 반사적으로 고개를 돌렸다. 이츠키의 시야 속 카게히라는 불안한 빛을 내비치고 있었다.
“아니... 우째 말이 읎는 게 걱정돼서...”
이츠키의 눈치를 보는 듯 살짝 올려다보는 눈동자와 목소리가 불안함에 덜덜 떨고 있었다. 괘안나? 사방이 조용하지 않았다면 다른 소리에 묻혀 듣지 못했을 정도로 나직했다. 이츠키는 도리어 팔짱을 끼며 코웃음을 쳤다. 쓸데없는 걱정이구나. 돌아오는 반응에 카게히라는 오히려 안도한 듯 환하게 웃었다. 흐흥, 스승님. 혹시라도 춥거나 그러믄 알려주래이? 감기에 걸리면 안되니께. 기쁘게 들리는 듯한 목소리에, 이츠키는 그저 고개를 뒤로 젖히고 하늘을 바라보았다.
너는 인간이 되고 싶지 않은 걸까.
이츠키는 또다시 목구멍까지 올라온 질문을 겨우겨우 눌러 삼켰다. 그렇게 물으면 그렇다고 대수롭지 않게 대답하는 것을 듣게 될까 봐. 카게히라는 작중의 인물을 이해할 수 있다고 했지만, 사실 이츠키는 내심 그가 다른 선택을 했으면 했다. 그것이 인간이니까. 이츠키 슈가 사랑하는 인간이라는 종이니까. 이츠키는 입술을 깨물며 복잡한 심경을 지그시 눌렀다. 그는 다시 한번 고개를 젖히며 두 눈을 감았다. 인간인 것조차 잊어버린 인간이라….
그렇지만, 어리석은 카게히라.
인형은 기쁘다고 웃거나 슬프다고 울지 않아.
그저 주인을 기쁘게 하기 위해서만 웃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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