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키나에 대한 날조 설정이 주된 스토리라인으로 들어가 있습니다.
* 오탈자나 비문은 발견할 때마다 수정합니다ㅠ_ㅠ
* 아래는 작업하면서 들은 곡 입니다.
https://youtu.be/gbY35xeYS7Y?si=Q1llFqCdYT-zamYg
* 후기는 이쪽 익명함 혹은 트위터로 부탁드려요!
https://spin-spin.com/pause_sign
해가 뜨고 지는 것을 하루라 정의한다면, 그것은 우리에게 존재하지 않는 단어일 것이다.
그러니 일상이라는 개념도 적합하지 않다.
극야
잠깐 잠들었나? 무겁게 내려앉은 눈꺼풀을 천천히 들어 올린다. 사실 잠든다는 감각은 카게히라에게 생소하다. 마키나는 잠이라는 것이 필요 없으니까. 꼭 누가 눈꺼풀을 누르고 있는 것 같아. 이상하리만큼 무거운 눈꺼풀을 접어본다. 흐릿한 시야지만, 익숙한 곳이다. 얼룩덜룩한 패치워크로 가득한 곳. 어쩌면 지저분하고 무질서하다고 할지 모르지만, 실은 이것은 정돈된 상태다. 당연하지. 이 모든 건 스승님의 작품이니까. 매일 엉성하게 한땀 한땀 놓는 자신과는 다르다.
그런데, 이상했다. 원래 여긴 언제나 어두컴컴한 곳이라 새 눈인 카게히라에게 이곳이 또렷하게 잘 보일 리 없었다. 카게히라는 고개를 돌려 좌우를 두리번거렸다. 패치워크로 빼곡히 메워진 벽이 길게 이어져 있다. 그 끝은 보이지 않는다. 스승님의 손길이 닿았음에 분명한, 익숙한 패턴들의 패치워크다. 그러나 이렇게 잘 보였던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스승님…?”
게다가 보통 같으면 진즉 잔소리와 핀잔을 내뱉고 있었을 스승님도 없었다. 카게히라는 느릿하게 두 눈을 깜빡였다. 아, 이거 꿈? 아무래도 수선하던 문장의 영향을 받은 듯하다. 카게히라는 곤란한 듯 한숨을 푸욱 내쉬었다. 이 실패작이! 화가 난 듯 버럭 소리치는 스승님의 목소리가 머릿속을 울렸다.
“스승님한테 또 혼나겄제….”
내도 이러고 싶었던 건 아인데…. 카게히라는 시무룩하게 중얼거렸다. 정돈된 문장들로 이루어진 패치워크 벽에 기대어 앉은 카게히라는 다리를 모아 감싸 안았다. 그 사람은 언제나 카게히라에게 문장들에 현혹되지 말라 했다. 그렇지만 결국 또 이 상태다.
“우째야 꿈에서 깨어날 수 있나….”
그가 수선한 문장에 스스로 깨어나는 방법 같은 건 알려주지 않는다. 감싸 모은 무릎 위로 볼을 기대고는 이내 고개를 푹 숙였다. 스승님… 보구싶데이…. 눈꺼풀이 서서히 가라앉았다. 분명 익숙하지만 낯선 장소를 시야에서 차단했다. 내는 바보라… 꿈에서 나가는 방법 같은 건….
“카게히라! 당장 일어나지 못하겠느냐?!”
뇌리에 바로 꽂히는 익숙한 성음에 카게히라는 두 눈을 번쩍 떴다. 눈앞에는 그토록 보고 싶었던 색으로 가득했다. 찌푸려진 미간과 위로 길게 뻗은 눈썹, 보랏빛 눈동자. 분명 스승님이다. 잠에 취한 듯 몽롱한 상태의 카게히라는 가만히 손을 들어 그의 찌푸려진 미간을 살살 문질렀다.
“스승님, 자꾸 이래 찌푸리면 안 된데이.”
잠에 취한 듯 몽롱한 눈빛을 한 채로 내뱉는 말에 이츠키는 그의 손을 잡아 내쳤다. 꽤 강한 힘으로 내쳐졌지만, 카게히라는 개의치 않았다.
“그래 찌푸리면 주름이 생겨버린다꼬.”
“기껏 깨워줬더니 일어나자마자 허튼소리를.”
그는 주저앉아 자고 있었던 카게히라가 정신을 차리자, 이츠키는 굽혔던 허리를 펴고 자세를 일으켰다. 내 미간 주름의 원인은 다 너 때문이잖아. 짜증스러운 어투에 카게히라는 고개를 들어 올려 멀뚱멀뚱 이츠키를 바라보았다. 이내 그는 동의를 표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스승님의 말은 틀리지 않제. 스승님이 그렇다면 그런 거다.
“으응, 내가 다 잘못했구마.”
“나를 달래려고 하는 사과 따위는 들어도 기분만 나쁠 뿐이야.”
“응아아… 그런거 아이다. 내는 진짜로 반성하고 있구마….”
코웃음을 치며 시선을 돌리는 모습에 카게히라는 안절부절못하며 손을 꼼지락거렸다. 으음, 우째야하나…. 저 상태의 스승님은 화가 풀릴 때까진 놔둬야 하긋제…. 작게 한숨을 내쉰 카게히라는 고개를 푸욱 숙였다. 꼬물꼬물 손장난을 치며 고민하던 카게히라는 옷이 당겨지는 느낌에 고개를 홱 돌렸다.
“응아아, 베어 씨. 내를 달래주는 거가?”
보랏빛의 통통한 몸체 위로 형형색색의 부속물로 잔뜩 꾸며진 테디베어가 그의 옷 밑단을 잡아당기고 있었다. 조곤조곤 카게히라의 작은 속삭임에 테디베어는 붙잡고 있던 옷을 놓고 짧은 두 팔로 이리저리 움직였다.
“으으응?”
베어 씨라 불린 테디베어는 팔짱을 끼듯 두 팔을 겹쳐 잡고 고개를 옆으로 홱 돌렸다. 그리고 카게히라와 마찬가지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이츠키를 짧은 손으로 가리켰다. 스승님? 카게히라의 답변에 곧바로 손을 내린 베어 씨는 카게히라의 옆으로 뒤뚱뒤뚱 걸어와 카게히라와 마찬가지로 벽에 등을 기대어 앉더니 고개를 푹 숙였다.
무언가 알 듯 말 듯 한 행위예술이었다. 음… 베어 씨, 내를 따라 하는 거가? 고개를 갸웃거리는 카게히라와 달리 이츠키의 얼굴은 싸하게 굳어졌다. 베어 씨는 거기에서 멈추지 않고, 일어나서 본인이 앉아있던 자리를 바라보며 안절부절못하는 것처럼 양팔을 위아래로 흔들흔들했다.
“농! 그런 적은 없다는 게야!”
“응아아! 스승님! 진정하래이!”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오른 이츠키는 테디베어를 양손으로 붙잡고 앞뒤로 흔들었다. 이 발칙한 인형 같으니라고! 이리저리 흔들던 이츠키의 팔을 붙잡은 카게히라는 앓는 소리를 내뱉었다. 덕분에 마수에서 벗어난 베어 씨는 양손으로 허리를 짚은 채 위풍당당한 자세로 이츠키를 빤히 바라보았다.
“아주 가소로운 인형이야. 나를 우습게 보는 게지.”
“응아아… 스승님, 베어 씨가 일부러 그런 건 아닐거꼬….”
벌떡 일어나 이츠키와 베어 씨의 사이를 가로막고 선 카게히라는 진정하라는 의미로 두 손을 천천히 위아래로 흔들었다. 스승님이 내를 걱정했다는 걸 알려주고 싶었던 거겠제? 그렇게 판단 내린 카게히라는 헤헤 웃으며 이츠키를 올려다보았다.
“스승님, 내를 걱정해주었나?”
“네가 일어나지 않으면 그만큼 일을 더 해야 하니까.”
“응응~ 그렇구마?”
기쁜 듯 볼을 발갛게 물든 채 헤실헤실 웃는 카게히라의 얼굴에 이츠키는 미간을 찌푸리며 볼멘소리를 내뱉었다. 기어오르는 게지. 이 인형이고, 저 인형이고. 날카로운 눈매가 매섭게 치켜 올라가더니, 둘을 노려보듯 직시했다.
“에헤헤, 스승님. 미안타. 다음부터는 안 그럴 테니 용서해도.”
“퍽 그러겠군.”
헤벌쭉한 얼굴에 이츠키는 코웃음을 쳤다. 스스로 조절하지도 못하면서 말이지. 이츠키는 익숙하게 팔짱을 낀 채로 카게히라를 내려다보았다.
“문장에 현혹되지 말 것. 그 머리는 내가 말한 걸 도통 기억하지 못하는 건가?”
그의 말에 카게히라는 고개를 좌우로 붕붕 흔들었다. 아이다! 그럴 리 읎제! 스승님의 말이라면 다 기억하구 있데이! 부정하려는 듯 몸을 앞으로 쑤욱 내민 카게히라의 눈은 단호했다.
“감정을 지우고, 현혹되지 말며, 그저 꿰매어 잇는다.”
카게히라는 익숙하게 이어지는 말을 내뱉었다. 맞제? 베시시 웃는 모습을 말없이 바라보던 이츠키는 여전히 무덤덤한 표정이었다. 그는 카게히라가 쓴 모자의 챙을 살며시 잡고 밑으로 끌어내렸다. 꾸욱 눌려 고개를 숙이게 된 카게히라는 앓는 소리를 내며 끙끙거렸다. 그러든 말든, 이츠키는 목소리를 낮추고는 천천히 말을 내뱉었다. 알면 그렇게 좀 해.
“스승님. 마키나는 무슨 일을 하는 거가?”
사다리 위에서 벽과 패치워크의 연결을 하고 있던 이츠키는 바늘을 쥔 채로 고개를 아래로 숙였다. 털썩, 바닥에 주저앉아 꼬물꼬물 여러 조각의 패치워크들을 바늘과 실로 연결하는 카게히라의 모습이 보였다. 동그란 뒤통수를 감싼 납작한 모자 옆으로 삐져나온 머리카락들이 움직임에 맞춰 살랑거렸다.
“마키나인 네가 할 말이냐?”
“으음, 그치만 눈을 뜨기 전부터 있었던 건 스승님이었지 않, 아얏!”
짧은 비명이 말을 끝맺었다. 으아아…. 카게히라는 한 손을 파닥파닥 흔들었다. 시무룩하게 가라앉은 눈썹이 눈에 훤한 듯, 이츠키는 한숨을 내쉬었다. 한숨 소리에 카게히라는 머쓱하게 웃으며 볼을 검지로 살살 긁었다.
“에헤헤…. 생각하다 보니 순간 잘못 찔러붓따.”
“그러니까 바느질할 때는 그거에만 집중해.”
쓸데없는 생각은 하지 마. 이츠키의 볼멘소리에 카게히라는 몸을 젖힌 채 눈을 마주하며 빙긋 웃었다. 내는 둔해서 개안타. 걱정하지 마라, 스승님. 이츠키는 코웃음을 치며 다시 하던 작업을 향해 몸을 돌렸다. 너 따위를 걱정했다고 말한 적 없어. 이츠키는 카게히라와 마찬가지로 패치워크 이음새를 바늘로 푹 찔러넣었다. 바늘만큼이나 날 선 목소리였지만 카게히라는 오히려 기쁘다는 듯 두 눈을 휘며 웃었다.
“물론 내는 스승님이 하라는 대로 할 거래이. 기냥 갑자기 궁금해져서.”
“너는 꼭 쓸데없이 말을 덧붙이는 나쁜 습관이 있어.”
손과 눈은 여전히 벽과 패치워크의 이음새 부분을 향한 채로 이츠키는 입을 열었다. 우리가 무엇을 하는 건지, 우리가 왜 이것을 하는 건지, 어떻게 되는 건지. 그런 건 생각할 필요 없어. 이츠키는 고개를 치켜들어 곧 도달할 천장을 바라보았다. 그냥 해야 할 일이야.
패치워크로 이루어진 문장들을 알맞게 잇고, 수선해 정돈한다. 이츠키의 시선은 이제 앞으로 채워야 할 벽을 바라보았다. 끝이 보이지 않는 어둠. 패치워크의 모양이지만, 사실 문장들로 이뤄진 것을 조직하고, 정돈해 벽을 전부 채우는 것. 먼저 마키나로 이 공간에 존재할 때부터 자각하고 있던 사명이다. 이츠키는 다시금 고개를 바닥으로 향했다. 카게히라의 동그란 뒤통수를 가린 납작한 모자가 시야에 담겼다. …나도 모든 것을 아는 건 아니야.
나직하게 들려오는 목소리에 카게히라는 고개를 홱 돌렸다. 카게히라의 시선이 느껴졌지만, 이츠키는 모르는 척 벽에 이어진 패치워크를 수선하며 말을 이었다.
“굳이 말하자면, 나 또한 우리가 어떻게 태어나고 존재하는 건지는 모른다.”
“으응? 스승님도 모른다꼬?”
“끊지 말고 마저 들어. 확실한 건, 우리는 누군가의 꿈을 만들어내고 있다는 것.”
“꿈을?”
난해한 이야기였다. 카게히라는 미간을 찌푸린 채로 두 눈을 감으며 이츠키의 말을 이해하려 애썼다. 이츠키는 물끄러미 카게히라를 내려다보았다. 눈꺼풀로 반쯤 내리깐 보랏빛 눈동자에는 복잡한 빛을 띠었다.
“네가 이따금 꿈을 꾸는 것이 그 증거다.”
“으응? 나?”
“이곳은 하루라는 개념이 없어. 낮도, 밤도 없지. 그저 어두운 공간일 뿐이다.”
이츠키는 천천히 사다리를 붙잡고 밑으로 내려왔다. 신발의 굽이 나무판자를 치는 소리가 규칙적이었다. 그리고 우리는 잠들지 않는 존재들이지. 탁, 마지막 판자를 밟는 소리와 함께 이츠키의 두 발이 바닥에 닿았다. 물끄러미 고개를 들어 이츠키를 바라보던 카게히라의 고개는 여전히 갸웃거릴 뿐이었다.
“그런데?”
“네가 잠에 빠진다는 것은 문장에 홀린 거다.”
“으으응?”
스승님, 더더욱 모르겠데이. 카게히라는 바느질을 멈추고 두 눈을 데구르르 굴렸다. 내가 스승님한테 물어본 건 마키나는 뭘 하는 거냐는 거였는데…. 카게히라는 검지로 볼을 꾸욱 눌렀다. 스승님의 말은 여전히 어렵구마.
“나는 문장에 영향을 받지 않아. 왜냐면, 이 문장들은 전부 누군가의 꿈 내용이니까.”
“으응, 문장에 영향을 받는 건 내만 그런다고 했제.”
“마키나는 꿈 따위 꾸지 않지. 아니, 정확하겐 없다. 왜냐면 잠을 잔다는 개념 자체가 존재하지 않으니까.”
바닥에 주저앉은 채인 카게히라를 두고 이츠키는 사다리 옆 벽에 팔짱을 낀 채로 몸을 기대었다. 카게히라는 그를 향해 몸을 돌려 앉았다. 서로가 마주 보는 자세가 되자, 이츠키의 검지가 툭툭 규칙적으로 까딱였다. 누군지도 모를 인간의 꿈 따위 흥미 없어.
“그런데 너는? 나와는 달리 불완전한 탓일까. 그 때문인지는 몰라도, 너는 종종 문장에 취해서 잠에 빠지더군.”
“으음, 스승님. 자기 평가가 높구마.”
“난 사실만을 말했을 뿐이야.”
지금껏 네게 물어보지 않았지만. 이츠키는 매서운 눈빛으로 카게히라를 직시했다. 쥐고 있는 바늘만큼이나 뾰쪽한 시선에 카게히라는 절로 침을 삼켰다.
“너는 아까 무슨 꿈을 꾸었지?”
“음… 스승님도, 베어 씨도 없었데이.”
흐릿하게 미소 지은 카게히라는 두 눈을 내리깔았다. 모자 탓인지 음영이 기울어진 낯빛은 흡사 창백해 보였다. 네가 생각하기에, 무엇에 영향을 받았다고 생각해? 이츠키의 물음에 카게히라는 천천히 두 다리를 세워 끌어모았다. 무릎에 볼을 댄 채로 말을 이어갔다. ‘끝없이 이어진 어둠 속, 나는 혼자 그곳에 서 있었다. 혼자는 너무나도 외로웠다.’
“그렇게 생각한 이유는?”
“정말 그 문장 그대로였으니께. 여태까지 꾼 꿈들도 보통 이런 식이었으니께….”
하루라는 개념이 없는 곳이라 언제라고 정확하게 언제라고는 말할 수는 없지만. 직전에 꾼 꿈도 이번과 비슷했다. ‘달콤한 아이스크림으로 양손이 가득했다. 혓바닥에서 느껴지는 달콤함은 너무나도 기뻐서 눈물이 날 것만 같았다.’라는 문장을 맞추고 이은 탓인지, 카게히라는 꿈속에서 단맛이라는 걸 느끼고 행복감을 느꼈다.
카게히라의 이야기를 들은 이츠키는 두 눈을 감고 생각에 빠졌다. 괜히 말했나…. 카게히라는 입술을 달싹이다 이내 무릎에 이마를 기대어 몸을 움츠렸다. 스승님한테 걱정이나 끼치고…. 내는 역시 바보다, 바보. 카게히라가 자책하며 끙끙거리는 동안, 이츠키는 생각이 정리된 듯 눈을 뜨고 카게히라의 앞으로 다가갔다. 그럼, 여태껏 그런 식으로 감각이나 감정을 느꼈느냐?
이어지는 이츠키의 물음에 카게히라는 고개를 번쩍 들고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가 다리를 굽혀 자세를 낮춘 탓에 두 사람의 시선이 일직선으로 맞닥뜨렸다. 두어 번 눈을 깜빡인 카게히라는 작게 고개를 위아래로 끄덕였다. 맛이라는 걸 느낀 건 아니었데이. 카게히라는 머뭇머뭇 말을 이었다. 아이스크림을 핥을 때, 단맛.이라는 단어가 머릿속을 스쳐 지나간… 그런 느낌이었데이. 그렇지만 행복하다는 감정은 제대로 알 수 있었데이. 그의 긍정에 이츠키는 손으로 턱을 쥐며 이해했다는 의미로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너는 원래도 감각이 둔한 편이라 꿈속에서도 그랬던 것일지도 모르겠군.”
“내 통증에 둔한 편이긴 하지만, 글타고 통증을 아예 못 느끼는 건 아닌데도?”
“그러니까 그 꿈의 원래 주인으로서 그 꿈을 꾸었다기보다는, 그저 영향을 받은 탓에 마키나 카게히라 미카로서 꿈을 체험하게 되었다.에 가깝다.”
이츠키는 멈추지 않고 말을 이어갔다.
“그래서 네가 꿈속에서 단맛을 느끼지 못한 거야. 무언가를 먹지도, 잠을 자지도, 마시지도 않는 우리가, 그런 감각을 인지할 수 있을 리 없으니까.”
이츠키는 카게히라의 어깨 위로 손을 얹었다. 내가 내린 결론은 이거다.
“공간들을 잇는 너의 그 능력 탓에 이런 현상이 생긴 거라고.”
“으응? 설마 내가 공간을 연결하는 것과 비슷한 방식으로 꿈과 연결한다는 거가?”
카게히라의 비명 같은 외침에도 그는 대수롭지 않게 고개를 끄덕였다.
“네가 매번 새로이 잇는 공간은 또 다른 누군가의 꿈속이겠지?”
“으음, 우리가 누군가의 꿈을 만들어내고 있다는 스승님의 말에 따르면 그렇겠제?”
고개를 기울인 카게히라는 그때의 감각을 기억해 내려 했다. 그러나 평소에는 그냥 했던 일이라 그런지 막상 생각해보려고 하니 그 일을 어떻게 했는지 말로 설명할 수가 없었다.
머리를 감싸 쥐며 끙끙거리는 모습에 이츠키는 가만히 그를 처음 본 날을 떠올렸다. 사실 카게히라도 그와 마찬가지로 패치워크를 꿰매는 일을 하긴 하지만, 그에게 그럭저럭 합격이다 싶은 정도가 되기까지는 꽤 오래 걸렸다. 놀랍게도 카게히라는 첫날, 맡겨둔 패치워크를 꿰매기는커녕 너덜너덜하게 만들어 놓기도 했으니 말이다.
너란 놈은 마키나로 온 주제에 도대체 할 줄 아는 게 뭐야! 공간을 쩌렁쩌렁 울리는 이츠키의 분노어린 목소리에 카게히라는 초식동물인 마냥 벌벌 떨며 우물쭈물 미안하다고 사과했다. 이츠키는 머리를 흐트러뜨리며 쯧쯧 혀를 찼다. 수선도 할 줄 모르는 애가 여기로 왜 오게 된 거지. 히잉…. 우는 듯한 소리가 들려도 거들떠보지 않았다. 곁으로 머뭇거리며 슬금슬금 다가온 그는 가르쳐주면 잘 할 수 있다는 뻔한 이야기나 하고 있었다. 이츠키는 한숨을 크게 쉬었다. 어쩌다가 내가 보육원 일까지…. 그는 시선을 돌려 다시금 카게히라를 머리부터 발끝까지 훑었다. 날카로운 시선에 움찔거리며 반응하더니 이내 점차 움츠러드는 모습이 참으로 꼴불견이었다.
그의 특징이라고 한다면, 색이 다른 두 눈동자였다. 이 애가 왜 이곳으로 왔을까. 기본적인 바느질도 못 하는데. 이츠키는 여태 자신이 완성한 벽을 바라보았다. 정렬된 패치워크들이 빼곡하게 벽에 붙어있었다. 남아있는 패치워크는 카게히라가 해내지 못한 패치워크 두 장뿐이었다. 그런 와중에 갑자기 바느질도 못 하는 새로운 마키나라…. 이츠키는 곧장 너덜너덜한 패치워크들을 현란한 솜씨로 수선해 흡사 퍼즐을 맞추듯, 비어있는 공간을 마저 채웠다.
비어있는 벽을 전부 채우는 일을 마쳤지만, 폭죽이 터진다든가 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오히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아서 당황한 건 이츠키 쪽이었다. 과업을 마친 이츠키에게 별안간 새로운 마키나가 나타났다. 이건 무슨 뜻일까. 남아있는 패치워크도, 비어있는 벽도 없다. 과업이 끝났다기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새로운 마키나랍시고 나타난 애는 수선을 잘하지도 않는다. 그렇다면 저 아이만이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는 것이고, 그것이 이츠키의 일과 관련이 있을 터다. 그렇게 결론 지은 그는 옆에서 안절부절못하는 작은 생물의 어깨를 붙잡았다.
“히, 히익!”
“뭐야, 그 기분 나쁜 소리는.”
짧은 비명에 이츠키는 절로 미간을 찌푸렸다. 하나하나 일일이 반응하는 것도, 재능이라면 재능이겠지. 이츠키는 작게 고개를 좌우로 흔들며 스쳐 가는 상념을 지워냈다.
“너, 이름은?”
“카, 카게히라 미카입니더….”
“나는 이츠키 슈. 마키나로서 이 공간을 수선해왔다.”
카게히라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지만, 반사적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이츠키는 카게히라의 두 어깨를 강하게 쥐었다.
“너도 마키나라면, 네 일이 무엇인지 알 수 있을 거야.”
“으,응?”
“네 무의식에 분명 기록되어 있을 거다. 나 또한 그랬고.”
너는 무얼 하기 위해 여기에 왔지? 이츠키의 질문에 카게히라는 작게 입을 벌리며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 그렇게 말해도… 내는 모르구마…. 카게히라는 얼굴을 구긴 채 울상을 지었다. 그러나 이츠키는 태도를 바꾸지 않았다.
“아니. 분명 있어. 그게 네 존재 이유겠지.”
“그, 그치만 정말 모르겠데이….”
불안한 듯 그는 양손을 마주 잡아 꼬물꼬물 움직였다. 시선을 내리깔아 그 모습을 본 이츠키는 대뜸 내뱉었다.
“나는 내 과업이 끝난 건지, 아닌지 모르는 상태야. 그런 와중에 네가 나타났다.”
이츠키의 말에 카게히라는 눈동자를 데구르르 굴러 그를 올려다보았다.
“그 말은, 네가 난제의 열쇠라는 거지. 생각해봐. 너는 뭘 하고 싶지?”
“나, 나는… 내가… 무얼 해야 하는 건지 알고 싶데이.”
카게히라의 시선이 이츠키가 완성한 빽빽한 벽으로 향했다. 빈 곳 하나 보이지 않은 채, 패치워크로 가득한 벽은 장관이었다. 그렇지만, 이미 완성된 곳이다. 카게히라는 여기서 무엇을 할 수 있지? 카게히라는 형형한 눈빛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다른 마키나를 바라보았다. 나는 이 사람을 위해 뭘 해야….
그때였다. 카게히라의 뒤쪽으로 어두컴컴하고 회오리치는 듯한 원형의 무언가가 나타났다. 카게히라의 앞에서 붙잡고 있던 이츠키가 그 이상 현상을 가장 먼저 눈치챘다. 보랏빛의 눈동자가 크게 떠졌다. 저건, 뭐지? 중얼거리는 이츠키의 입 모양을 본 카게히라는 천천히 몸을 돌려 그가 바라보는 곳을 보았다. 카게히라 또한 마찬가지로 놀란 듯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네가 만든 건가?”
“내는… 아무것도….”
흔들리는 동공은 거짓을 말하는 것 같지 않았다. 그렇다면 무의식적으로 한 걸까. 이츠키는 그에게서 시선을 떼고 다시 그 의문스러운 것을 보았다. 그렇다고 해도… 이건 대체 뭘 하라는….
이츠키가 고민하던 사이 거무튀튀한 공간이 일그러지며 마구 요동쳤다. 놀란 그는 멋없는 비명을 내뱉었다.
“뭐, 뭐야?! 뭘 한 거야, 너는!”
“진짜 내는 아무것도 안 했데이!”
억울하다며 빼액 소리치며 울먹거리는 모습에 이츠키는 그의 어깨를 붙잡은 채로 한 발자국 천천히 뒷걸음질 쳤다. 그리고 이내 이지러지며 요동치던 그것에서 무언가가 튀어나왔다. 두 사람 앞에 나타난 것은, 보라색 몸체를 가진 일명, 테디베어라 불리는 것이었다. 팔 만큼이나 짧고 두툼한 두 다리로 우뚝 선 채, 그것은 두 사람을 바라보는 듯했다.
“인, 인형 씨?”
카게히라는 천천히 쭈그리고 앉아 테디베어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이봐, 위험한 것일지도 모르는데. 뒤늦게 정신을 차린 이츠키는 그의 어깨를 다시 붙잡았다. 보라색의 테디베어는 카게히라를 발견하고선 흡사 아기처럼 아장아장 걸어왔다. 그리고 짧은 팔로 그를 가리켰다.
“으응? 나?! 뭐? 왜?”
패닉에 빠진 카게히라를 내버려 두고, 그 인형은 카게히라를 가리킨 팔을 움직여 이츠키도 함께 가리켰다. 두 사람을 가리킨 테디베어는 몸을 돌려 뒤에 있는 걸 가리켰다. 테디베어가 튀어나온 그 수상한 거였다.
“설마, 들어가라는 건가?”
“저, 저기에 들어가라꼬?”
두 사람이 동시에 외치자, 테디베어는 고개를 위아래로 힘껏 끄덕였다. 그리고 다시 아장아장 걸어 그 수상한 곳으로 짧은 발을 뻗었다. 테디베어는 흡사 개선장군처럼 의젓하게 먼저 나아갔다. 이내 테디베어가 수상한 곳으로 사라지자, 카게히라는 고개를 돌려 이츠키를 바라보았다.
“어, 어떡하믄 좋제…?”
침을 꿀꺽 삼킨 카게히라는 불안한 목소리였다. 갑작스럽게 너무나도 많은 일이 일어난 탓인지, 이츠키는 관자놀이를 검지로 꾸욱 눌렀다. 후…. 없던 두통이 생기는 것 같았다.
“우선은, 가봐야겠지. 어쩌면 이게 정답일 지도 모르니까.”
“그, 그럼 이건 내가…?”
“그럴 가능성이 크겠지, 아마도.”
이츠키는 얼어붙은 카게히라를 등진 채로 그를 지나쳐 걸어갔다. 이것 너머에는 무엇이 있는 걸까. 수상한 것으로 손을 뻗었다. 푹 들어간 손에는 다행히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괜찮겠지. 이츠키는 침을 꿀꺽 삼키며, 테디베어와 마찬가지로 걸음을 내디뎠다. 뒤에서 옷이 잡아당겨지는 느낌이 들었다. 아무래도 그 아이가 붙잡은 모양이었다. 카게히라는 대체 뭘까. 이게 그의 능력인 걸까. 가득한 의문을 안은 채, 이츠키는 그 속으로 들어갔다. 그때 마침, 이츠키의 머릿속에 스쳐 가는 생각이 있었다. 다른 장소를 연결하는 것, 그래. 어쩌면 가교 같은 역할일지도.
그리고, 정말로 카게히라는 또 다른 공간을 연결했다.
“사족이 길었지만, 여하튼 그 능력 탓에 네가 꿈과 연결되기 쉬운 것 같다는 의미야.”
“나, 나쁜 건 아니긋제…?”
“그건 나도 몰라.”
이츠키는 몸을 일으켜 세웠다. 자, 쉬었으니 마저 일해. 몸을 일으키는 이츠키를 따라 고개를 치켜든 카게히라는 입을 달싹였다.
“스승님… 혹시… 내가 또 잠들면 깨워줄 수 있나…?”
“그렇게 되지 않게 조심하기나 해.”
으응! 카게히라는 실실거리며 웃었다. 스승님이 도와준다믄 안심이데이! 카게히라는 깍지 낀 두 손을 머리 위로 쭈욱 뻗었다. 굳어 있던 근육들이 풀어진 건지, 카게히라는 작게 신음했다. 이츠키는 그를 등진 채 하다만 작업 재개를 위해 벽으로 향했다.
“마키나는 참 신기한 거 같데이. 감각도 못 느끼고, 음식을 먹지 않아도 괜찮고….”
“뭐, 어떻게 보면 효율적인 몸이지. 그저 과업에만 온전히 집중할 수 있게 최적화된 존재잖아.”
중얼거리는 카게히라의 말에 이츠키는 나직하게 대답했다. 그의 대답에 오싹해진 카게히라는 온몸을 부르르 떨며 양팔을 덥석 붙잡았다.
“스, 스승님. 그렇다믄 우린 사실 누군가에게 조종당하는 로봇일지도 모른데이.”
“그 말은 우리가 통속의 뇌라고 말하고 싶은 걸까.”
“통속의 뇌?”
되물은 카게히라의 모습에 이츠키는 놀랍지도 않다는 표정이었다. 오히려 모르는 게 당연하다는 듯했다. 우리가 사는 현실은 사실 컴퓨터의 전기신호로 인해 만들어진 환상이라는 거지. 설명을 마친 이츠키는 큭큭 웃었다.
“그렇지만 말이지. 사실 난 반대로 생각했다. 우리는 그 통속의 뇌를 제어하는 전기신호와 비슷한 것일지도 모르겠다고.”
“우째서?!”
“결국 우리는 누군가의 꿈에 침투해 수선이라는 이름으로 조정하는 일을 하고 있으니까.”
조종은 아니고 조정이니 조금 다를 수도 있겠지만. 이츠키는 즐거운 듯 웃었다. 드물게 웃는 모습이었지만, 카게히라는 불안한 표정이었다. 스, 스승님… 좀 무섭구마…. 카게히라는 떨떠름하게 웃으며 쥐고 있던 패치워크를 끌어당겨 바늘을 찔러넣었다.
“쯧, 말은 꺼낸 건 너였잖아. 듣기에 나쁘군.”
작업을 위해 나무 사다리를 붙잡은 이츠키는 불쾌한 듯 카게히라를 흘겨보았다. 카게히라는 실없이 웃으며 찔러넣은 바늘을 빼냈다. 한 땀 한 땀 공들여서 하는 모습에 이츠키는 괜히 심술궂게 내뱉었다.
“그 속도면 우린 평생 죽을 때까지 이 일을 하고 있겠구나.”
“응아아… 스승님이 너무 빠른 기다.”
내는 최선을 다하고 있는 거구마… 스승님의 기준은 너무 높데이…. 웅얼웅얼 볼멘소리를 내뱉는 모습에 이츠키는 어깨를 으쓱였다. 사다리의 나무판자에 발을 디딘 그는 천천히 위로 올라가기 시작했다. 카게히라에게는 아니라고 말했지만, 마키나의 사명이 주입된 채로 움직이는 우리야말로 사실 정말 통속의 뇌일지도. 정말 이곳은 환상일지도 모르지. 하지만 진실은 아무도 알 수 없었다.
아래는 짧은 해설? 입니다...
제가 생각한 마키나는 꿈의 흐름을 잇는 설정이었습니다.
문장으로 이뤄진 패치워크를 알맞은 위치에 놓고 바느질로 잇는다~ 는 느낌이었어요.
왜 마키나로 했냐면... 뭔가 전자세계 세계관과 인위적인 행위가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미카가 포털을 열었을 때 나온 테디베어는 일종의 안내자 역할이란 느낌이었어요.
미카는 자기가 뭘 해야할지 몰랐으니까요. 그리고 그걸 알고싶어했으니까요.
저곳은 정말 현실일까요? 아님 정말 통속의 뇌에서 전기신호로 인한 환상일까요.
그건 현실을 사는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따라 다르지 않을까요.
극야는 예전에 짧게 쓴 적이 있었는데 어쩌다보니 갑자기 생각나서 조금 설정을 갈아엎고 어찌저찌 썼네요.
오늘 하루에만 6천자 써본 적은 처음이라 너무 신기하고... 혹시 수정할 부분 발견하게 되면 알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ㅠ.ㅠ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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