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te Bow Tie Hearts Blinking Blue Pointer
종뱅 / 중력
가비지타임

23.10.29.

안 사귀는 두 사람. 유스 트레이닝.

 


“왜 그만두려는 건데.”

별안간 들려온 목소리에 열린 캐비닛 너머로 고개를 내민 박병찬은 눈을 흐릿하게 떴다. 투명한 유리창 너머 내리쬐는 붉은 석양에 병찬은 한쪽 눈을 슬며시 감았다.

여름의 끝을 알리는 쌍용기가 끝나서인가, 하늘이 벌써 불그스름했다. 붉은빛을 잡아먹는, 어둠을 몰고 오는 태풍처럼, 짙고 검은 눈동자가 형형했다.

“뭐야, 최종수?”

어쩐 일이야? 예상치 못한 불청객의 난입에도 개의치 않고 캐비닛에서 짐을 꺼내는 행동은 멈추지 않았다. 하나, 둘, 캐비닛에 놓인 짐들이 병찬의 수중으로 향했다. 두 사람 사이에서 들리는 건, 부스럭거리는 소리뿐이었다.

탁- 캐비닛을 닫은 병찬의 시선이 꽈악 쥔 손에 닿았다. 하아… 한숨 소리에도 최종수는 입을 꾹 다문 채였다.

“갑자기 와서는 무슨 소리야?”

묵묵부답이었으나, 내려다보는 눈빛은 여전히 매서웠다. 더플백을 어깨에 맨 병찬은 닫힌 캐비닛에 비딱하게 기대섰다. 고된 연습경기 탓인지, 머리카락은 땀에 젖어있었다. 살짝 고개를 들자, 두 사람의 시선이 맞닿았다.

“농구, 그만둔다고 했잖아.”

아랫입술이 하얗게 될 정도로 꾹 깨문 채, 작게 내뱉었다. 꽈악 쥐고 있던 손이 풀렸다. 시선을 피하려는 듯, 눈동자가 바닥을 향했다. 병찬은 캐비닛에서 기댄 몸을 일으켜 바로 섰다. 고개를 옆으로 살짝 기울였다. 그, 누가 뭘, 어쩐다고? 조심하려는 듯, 흐릿한 말투였다.

“…박병찬, 네가, 이제 질려서 안 한다고, 했잖아.”

낮게 가라앉은 목소리가 무거웠다. 병찬의 시선이 데구르르 굴렀다. 무언가를 생각하듯, 팔짱을 끼고 눈을 감았다. 작게 앓는 소리는 덤이었다. 병찬은 순간 번뜩 눈을 떴다.

“설마, 아까 상호랑 하던 대화 들었어?”

…맞아? 병찬의 시선에 최종수의 시선이 병찬을 향했다. 고개를 끄덕이지도, 긍정하지도 않았지만, 병찬은 작게 입을 벌렸다. 끄응, 앓는 소리와 가는 머리카락을 벅벅 헤집었다. 형, 병찬 형. 어디 있어요? 시간이 지나도 오지 않는 박병찬을 찾는 소리가 흐릿하게 닿았다. 박병찬은 조심스럽게 운을 떼었다. 저기… 최종수…

“뭔가 잘못 알고 있는 거 같은데… 나, 농구 그만두는 거 아니야.”

박병찬의 대답에 도리어 최종수의 미간이 좁혀들어 갔다. 무슨 소리냐는 듯, 무시무시하게 노려보는 눈빛에 난감한 듯 볼을 슬슬 긁으며 말을 이었다. 아니, 그러니까… 그만두는 건 맞는데… 그게 농구는 아니고… 민망함을 감추려는 듯, 멋쩍게 웃었다.

“퍼즐게임… 같은 건데…”

 

 

 

중력

최종수 박병찬

 

 

 

운동화의 밑창이 코트에 미끄러지는 날카로운 소리가 울렸다. 효과음처럼 통통, 농구공이 튀는 리드미컬한 소리도 함께였다. 목덜미를 살짝 덮는, 가는 머리카락이 움직임에 반응하며 위아래로 이리저리 흔들렸다.

형광의 농구화가 눈 깜짝할 사이, 가드를 뿌리치고 가볍게 뛰어올랐다. 손안의 농구공이 던져졌다. 리바운드! 다급한 외침에도, 야속하리만큼 공은 어떤 흔들림 하나 없이 손쉽게 골대를 통과했다. 연습게임의 끝을 알리는 휘슬 소리가 경기장을 가득 채웠다. 어느 한쪽은 탄식, 어느 한쪽은 기쁨의 포효를 외쳤다.

후우, 마지막 슛을 넣은 박병찬은 숨을 고르듯 호흡을 크게 들이쉬었다 내뱉었다. 단 하나의 흔들림도 없이 깔끔하게 들어간 마지막 슛이 만족스러운지, 입꼬리를 끌어올렸다. 햄! 고개와 함께 몸을 뒤로 돌리자, 반짝이는 눈빛이 병찬의 시야에 다가왔다.

“병찬 햄! 마지막에 진짜 멋있었어요!”

여유롭게 가드를 뿌리치고 거기서 바로 삼 점 슛이라니! 흥분한 듯한 과장된 어투와 행동에 병찬은 소리를 내 웃었다. 그으래? 늘어지는 말투에는 웃음기가 가득했다. 병찬은 다가오는 상호를 향해 손바닥을 내밀었다.

“상호도, 수고했어.”

두 손바닥이 맞닿았다. 경쾌한 하이 파이브 소리였다. 이길 수 있었는데… 아쉬워요. 상호의 눈이 점수판을 향했다. 병찬 또한 상호의 시선을 따랐다. 10점 내외로 큰 점수 차이는 아니었다. 병찬은 어깨를 으쓱였다.

“어쩔 수 없지, 뭐. 그래도 다음엔 분명 이길 수 있을 테니까.”

여러 번의 부상과 재활은 박병찬이라는 선수에게서 빠질 수 없는 단어였다. 병찬에게 가혹할 정도로 무릎 부상은 부상과 재활을 반복하게 했다. 박병찬은 농구를 포기할 수 없었다. 코트를 뛰는 박병찬의 얼굴은 언제나 행복해 보였으니까. 모두 내심 그의 회복을 고대했다.

매사 노력하는 병찬의 성향은 재활에서도 두드러졌다. 이대로라면 지금보다 더 오래 경기를 뛸 수 있을 거에요. 병찬의 재활을 담당하던 치료사와 의사 모두 단언했다. 분명, 언젠가 다시 풀타임을 뛰는 것도 가능할지 모른다는 기대감이 병찬의 마음 깊숙이 솟아올랐다.

아직 풀타임까진 무리지만, 전처럼 한 세트도 뛰지 못할 정도까진 아니었다. 연습게임으로 한 세트, 그러니까 딱 이십 분의 경기였다. 팀은 어떻게 나누나요? 누군가의 질문에 코치는 두 사람을 가리켰다. 최종수, 박병찬. 이렇게 두 사람으로 팀을 나눈다. 이십 분, 한 세트 경기니까 교체는 없다.

 

피드백을 하려는 건지, 모두를 불러 모으는 외침이 귓가에 꽂혔다. 코치를 향해 달려가는 상호의 뒤로 병찬이 천천히 걸어갔다. 느릿하게 걸어가는 병찬의 옆을 스쳐 지나갔다. 땀에 젖은 탓에 약간은 가라앉았지만 굽실거리는 검은 머리카락과 검은색 유니폼. 야, 최종수. 병찬은 지나쳐가는 최종수를 불러세웠다.

최종수는 걸음을 멈추고 고개만을 슬쩍 돌아봤다. 입을 열지는 않았지만, 어딜 봐도 왜 불렀냐는 눈빛이었다. 병찬은 걸음을 재촉해 그의 옆으로 다가갔다. 살짝 몸을 낮춰, 툭, 어깨로 슬쩍 최종수의 팔뚝을 쳤다.

“수고했다.”

병찬의 움직임을 쫓던 최종수는 씩 웃으며 시선을 마주하는 모습에도 표정 변화 하나 없었다. 고개를 돌려 다시 코치 쪽을 향해 걸어갔다. 병찬은 눈을 깜빡이다가 피식 웃었다. 얘도 많이 변했구나.

 

연습경기에 대한 짧은 피드백 이후 주어진 휴식 시간이었다. 한 세트 정도의 경기는 문제 될 것이 없었지만, 상대가 상대였던 만큼 충분한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수분 보충이나 할까, 병찬은 자리에서 일어나 경기장 밖으로 향했다. 어라, 햄. 어디 가세요? 음료 사러, 다녀올게. 손을 흔들며 앞서가자, 병찬과 같은 팀으로 경기를 뛰었던 상호는 그 뒤를 쫓았다. 같이 가요!

두 사람은 체육관의 벽을 끼고 돌았다. 자판기가 체육관 뒤편에 있던 탓이었다. 아, 맞다. 상호 너 혹시 최종수랑 연락해? 갑자기 생각났다는 듯, 병찬은 고개를 돌려 상호에게 시선을 향했다. 상호는 의중을 모르겠다는 듯 떨떠름한 표정이었다. 어, 아니요? 왜요?

“그래? 그러면 말고.”

별거 아니라는 듯 시선을 떼고 다시 앞을 향한 병찬의 표정은 별다른 변화가 없었다. 병찬을 물끄러미 바라본 상호는 되물었다. 최종수는, 왜요?

“음… 아니 뭐, 전에 너랑 번호 교환하다가 어쩌다 걔랑도 교환했었잖아. 그래서 그냥 궁금해서.”

“햄은요?”

상호의 질문에 병찬은 고개를 작게 저었다. 뭐, 사실 연락할 만큼 서로 좋은 관계였던 것도 아니고… 병찬은 목덜미를 슬슬 문지르며 목을 좌우로 꺾었다. 아까 보니까, 확실히 좀 달라진 것 같아서.

자판기에 동전이 들어가는 소리가 경쾌했다. 하나, 둘, 동전이 자판기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불이 들어오는 자판기를 바라보며 고민에 빠진 병찬에게 상호는 먼저 뽑은 캔 음료를 열었다. 치이익, 탄산 소리가 시원했다. 병찬은 결정한 듯, 버튼을 꾹 눌렀다. 캔 음료가 떨어지는 소리가 나자, 병찬은 자세를 낮추었다.

“아 맞다, 햄. 그 게임 있잖아요. 그거 50번 스테이지 깨셨어요?”

“50번? 시간 지나면 폭탄 터지는 그거?”

어휴, 이거 왜 이렇게 안쪽으로 떨어졌지? 병찬은 팔을 뻗어 더듬더듬 음료를 찾았다. 찾으려던 걸 찾았는지, 작게 환호성을 지른 병찬은 몸을 일으켰다. 난 그거 최대한 폭탄 주변으로 몰아넣어서 많이 터트리는 식으로 했는데. 시원한 캔이 기분 좋은지, 흥얼거리며 캔을 열었다. 상호와 마찬가지로 탄산이 터지는 소리가 벌써 시원했다. 쉽다는 듯 말하는 모습에 상호는 귀가 축 처진 강아지처럼 고개를 푹 숙였다.

“햄은 진짜 농구도 그렇고, 게임도 그렇고… 못하는 게 뭐예요?”

상호의 볼멘소리에 병찬은 어깨를 으쓱할 뿐이었다. 꿀꺽꿀꺽 시원한 음료를 단번에 전부 마신 병찬은 크으, 하며 탄성을 내뱉었다. 엄청 시원하네. 비어버린 캔을 꽈악 쥐어 우그러뜨리고는 저 멀리 쓰레기통을 향해 던졌다. 찌그러진 캔은 유려한 곡선을 그리며 쓰레기통 안으로 정확하게 들어갔다.

그 모습에 상호도 질 수 없다는 듯 다 마신 캔을 던졌다. 캔은 쓰레기통의 가장자리를 맞았으나 다행히 밖으로 튕겨 나가지 않고 무사히 안으로 들어갔다. 두 사람은 몸을 돌려 왔던 길을 되돌아갔다. 햄, 그러면 몇 스테이지이신 거에요? 상호의 질문에 병찬은 눈을 감고 고개를 치켜들었다. 한, 120 스테이지 정도였나…? 그 대답에 상호의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생각을 멈춘 병찬은 고개를 내리다, 다가오는 최종수를 발견하고 손을 흔들었다.

병찬이 인사를 건네든 말든, 최종수는 시선으로 두 사람을 훑기만 했다. 아, 근데 이젠 좀 지겨워서 그만할까, 싶어. 병찬의 대수롭지 않은 말에 상호는 고개를 갸웃했다. 왜요? 그렇게 잘하시면서… 그만두기엔 너무 아깝잖아요.

“그냥… 이젠 좀 지겨워져서.”

권태로움이 묻어나는 병찬의 목소리 옆을 최종수가 스쳐 지나갔다. 두 사람에게서 시선을 떼고 바닥을 바라보며 걷는 모습에 도리어 병찬의 시선이 그에게 닿았다. 뭐, 할 만큼 한 것 같기도 하고… 슬슬 좀 질리기도 하고… 최종수가 시야에서 벗어나자, 병찬의 시선 또한 떨어졌다. 제가 그만두는 것도 아닌데 아쉬워하는 상호의 모습에 병찬은 씩 웃었다. 하다가 막히면 형아한테 연락해~ 아는 선에서 도와줄 테니까.

  

 

민망하지 않게끔 배려해 주려는 건지, 조심스러운 어투로 토해지는 사건의 경위가 최종수의 귓가에 꽂혔다. 묵묵부답의 최종수의 모습에 박병찬은 조심스럽게 그를 불렀다. 그으… 최종수…? 이름이 불리자마자 최종수는 곧장 몸을 돌렸다. 빠르고 큰 보폭으로 탈의실 문을 향하더니 머뭇거림 하나 없이 손을 뻗어 문고리를 잡아 돌렸다. 자리를 뜨려는 그 모습에 병찬은 한 손을 들어 마치 나팔을 부는 듯 입가에 가져다 대었다. 최종수!

“내가 농구 그만둔다고 해서 걱정했어?”

병찬의 말에 최종수의 손이 멈췄다. 땀에 젖어 축 처진 머리카락 너머로 살기 어린 눈빛이 병찬을 노려봤다. 어깨를 으쓱인 병찬의 눈매가 둥글게 휘었다.

“형아가 종수 버릇 고쳐준다고 호언장담했으니까. 그때까진 농구해야지 않겠어?”

빙긋 웃는 모습에 최종수의 유려한 미간에 골짜기가 패였다. 어깨를 으쓱인 행동에 흘러 내려가는 더플백을 추켜올린 병찬은 입꼬리를 끌어올려 미소 지었다.

“고마워.”

끼익, 최종수의 손길에 육중한 철문이 열렸다. 연락할 테니까, 무시하지 마라? 석양을 잡아먹은 블랙홀은 어떠한 말도 꺼내지 않았다. 최종수의 뒤를 따라 탈의실 밖으로 나온 병찬의 면면에 붉은빛이 맴돌았다. 앞서 걸어가는 길고 검은 그림자가 눈에 밟혔다. 병찬은 매고 있던 더플백의 끈을 쥐었다 폈다. 짙게 가라앉는 눈빛과 달리 입은 미소를 지은 채였다.

동정, 은 아닌 것 같았지. 박병찬은 혼자 나직하게 중얼거렸다. 고개를 들어 멀어져가는 그림자의 주인을 직시했다. 무슨 생각이었을까, 박병찬은 최종수의 오해에도 평소처럼 장난치듯 웃을 수 없었다. 다급한, 초조한, 믿을 수 없다는 눈빛을 봤더라면, 그 누구도 웃을 수 없었을 테니까.

탈의실 문을 닫고 멍하니 멀어져가는 최종수의 뒷모습을 보았다. 가장 의외의 인물이 걱정이라니…, 어색했다. 서로 너무 달라서 절대 이해하지 못할 것만 같은 사람에게서. 박병찬은 심호흡을 내뱉고, 가벼운 발걸음으로 저를 찾아 헤매는 동료들에게 향했다. 그래, 어쩌면 우리는 농구라는 접점 하나만으로도 서로를 이해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중력 ; 지구가 물체를 잡아당기는 힘

 

+ 오탈자 수정

++ 문장부호 오타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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