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te Bow Tie Hearts Blinking Blue Pointer
종뱅 / 잔존
가비지타임

23.08.26.

#종뱅_전력60분 부재

 


정신을 일깨우는 듯, 뇌리에 꽂히는 휘슬 소리에 최종수는 눈을 깜빡였다. 순간, 이상한 기시감에 휩싸였다. 분명, 지금 눈앞의이 상황이 익숙한데, 생소했다. 벤치로 향하는 사람들의 뒷모습을 보며 걸음을 옮겼다. 익숙한 유니폼과 익숙한 상황이었다. 최종수는 고개를 돌려 전광판을 바라보았다. 경기 종료까지 얼마 남지 않은 시간, 전광판에 선명하게 적혀있는 득점과 팀명은 헛웃음이 나올 지경이었다. 오늘은 몇 년 전에 우승으로 마무리했던 올림픽 결승전이었다.

서른을 앞둔 최종수는 태극기를 달고 수없이 많은 국제대회를 뛰었지만, 가장 기억에 남는 해를 선택하라고 하면 단연 이때일 것이다. 처음으로 국가대표가 되어, 올림픽에 출전해서 우승을 거머쥐었던 해였다. 또한, 미국에서 경기를 뛰던 최종수와 성공적으로 재활을 마치고 국가대표에 선발된 박병찬이 고등학생 이후 처음으로 다시 만났던 때이기도 했다.

 

“오랜만이다?”

최종수는 눈앞에 들이밀어진 손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리고 시선을 들어 올려 인사를 건넨 얼굴을 직시했다. 몇 년 전에 봤던 얼굴과 크게 달라지지 않은 모습이었다. 웃느라 휘어진 눈매, 미소 지은 입매까지. 최종수가 내민 손을 맞잡자, 잠깐 놀란 듯 눈을 동그랗게 뜨더니 이내 다시 씩 웃었다. 미국 갔다는 소식은 들었어. 거긴 어때? …그냥, 뭐. 말끝을 흐리는 대답에 박병찬은 그렇구나. 하고는 악수한 손을 풀었다. 마주 잡은 두 손이 떨어지고 그는 손을 흔들며 몸을 돌렸다.

“이왕 같은 팀으로 뛰게 됐으니까, 잘 부탁해.”

먼저 간다며 멀어지고 멀어져 시야에서 사라지자 최종수는 마주 잡았던 손을 두어 번 쥐었다. 동료였던 적도 없는 사람과 동료라니, 괜히 이상한 기분이었다.

 

시간이 흐른 지금에서야 보니 어쩐지 그립게도 느껴지는 동료들의 뒷모습을 보며 발걸음을 옮겼다. 전술을 확인하려는 듯 감독과 코치, 선수들이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최종수는 습관적으로 눈을 굴려 박병찬을 찾았다. 분명, 같이 뛰었으니까. 서로 합을 맞추고, 패스하고, 득점했었으니까. 그러나 그 어디에도 박병찬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잠깐 어디 갔나? 최종수는 동료에게 다가갔다. 박병찬 어디 갔어? 그의 질문에 동료는 고개를 옆으로 갸웃하더니 되물었다.

“박병찬? 그게 누군데?”

 

경기 종료를 알리는 휘슬 소리와 함께 관객석에서 함성이 터졌다. 이변은 없었다. 역시나, 최종수가 기억하던 그대로 대한민국의 승리였다. 환호성과 득점가, 동료들의 세레모니, 휘날리는 플래카드들, 단상 위 올라가는 태극기 그리고 들려오는 국가까지. 전부 그대로였다. 딱 하나, 박병찬의 존재만 제외하고.

 

분명, 최종수가 기억하는 그 날 결승전의 마지막 득점자는 박병찬이었다. 수비수 둘을 끌어들인 최종수가 박병찬에게 패스한 공이 골대 안으로 들어갔다. 동시에 경기 종료를 알리는 휘슬이 경기장을 울렸다. 크게 환호성을 지른 박병찬은 동료들과 얼싸안고기쁨을 나누었다. 그와 반대로 동료들과 눈짓 또는 하이 파이브로 기쁨을 나눴던 최종수는 벤치에 앉아서 숨을 고르고 있었다. 그를 발견한 박병찬은 곧장 달려와 거칠게 머리카락을 쓰다듬었다. 땀에 젖은 머리카락이 이리저리 헤집어지자 버럭 화를 내는최종수에게 박병찬은 예의 환한 미소를 지으며 그렇게 말했다. 형아가 종수 면제시켜 줬다?

그랬어야 했는데, 마지막 득점자도, 패스한 공을 받은 사람도, 유니폼에 적힌 등번호도 전부 박병찬이 아니었다. 심지어 동료들마저 박병찬의 부재를 전혀 느끼지 못했다. 아니, 애초에 처음 듣는 이름이라는 반응이었다. 마치, 이 세상에 박병찬이라는 존재는 없는 것처럼.

 

최종수는 스스로가 무슨 정신으로 숙소까지 도달했는지 기억나지 않았다. 숙소까지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도 분명 옆자리에는 박병찬이 있었는데, 없었다. 시끌벅적한 버스 안에서 최종수 혼자 괴리감을 느꼈다. 이상했다. 여긴 분명 최종수가 기억하는 해였음에도 불구하고, 기억과는 모든 것이 달랐다.

 

먼저 자리에 앉아 평소처럼 음악을 듣고 있던 최종수는 갑자기 허전해진 한 쪽 귀에, 고개를 옆으로 돌렸다. 타월을 목에 두른 채, 종수의 한 쪽 귀에서 빼낸 이어폰을 귀에 끼우고 있었다. …뭐 하는 짓이야? 같이 듣자. 오늘 배터리 충전 안 해서 이어폰이 맛이 갔거든. 씩 웃은 박병찬은 보란 듯이 손에 쥐고 있던 무선이어폰 케이스를 작게 흔들었다. 관심 없다는 듯 최종수는 고개를옆으로 돌려 창가에 고개를 기댄 채 눈을 감았다. 멀어지는 거리에 느슨하던 이어폰 줄이 약간 팽팽해졌다. 이내 박병찬은 몸을 기울여 최종수의 어깨에 고개를 놓았다. 어깨에서 느껴지는 무게감에 최종수가 고개를 살짝 들어 돌리자, 박병찬은 이미 눈을 감은 채였다.

경기를 치른 후의 흥분감과 첫 경기에 금메달이라는 성과에 대한 고양감이 흘렀으나, 그와 다르게 몸은 상당히 피로감을 호소했다. 내치기도 귀찮은지, 가만히 휴대폰을 들어 영상을 보기 시작했다. 끔찍하게도 심한 불면증 탓에 이루어진 최종수의 플레이리스트는 지루하기 짝이 없는 영상들로 이루어져 있었다. 별생각 없이 영상을 보던 그는 어깨에 기대어진 머리가 앞으로 쏟아지려는 걸 느끼고 빠르게 붙잡아 다시 어깨 위로 올려두었다. 동료들과 떠들썩하게 승리의 기쁨에 취하며 에너지 넘치던 모습과는 달리 지금은 제대로 곯아떨어진 상태였다. 물끄러미 그 얼굴을 보다 다시 휴대폰을 향해 시선을 돌린 순간, 최종수는 인상을 찌푸렸다. 아, 왜 그랬지. 그냥 떼어내면 됐는데.

 

분명, 그랬음에도. 그 모든 것이 부재한 옆자리, 느껴지지 않는 어깨 위의 온기와 무게, 나눠 끼었던 이어폰 탓에 선명하지 않은음질, 이어폰이 없는 귓가를 통해 들려오던 작은 숨소리까지. 그 무엇도 지금의 최종수에게는 존재하지 않았다. 숙소를 향하는 버스 안에서 최종수는 선명하게 들려오는 음악 소리에 오히려 괴리감을 느꼈다.

 

익숙한 호실의 방문을 열었다. 쳐둔 암막 커튼 탓에 실내는 암흑 그 자체였다. 최종수는 어색하게 방 안으로 들어섰다. 스위치가 눌리는 소리와 함께 실내에는 빛으로 가득 찼다. 실내를 돌아본 최종수는 답답함에 한숨을 내뱉었다. 모든 게 하나뿐이었다. 최종수의 기억 속 두 쌍이어야 할 물건들이 전부 한 쌍만 존재하고 있었다. 칫솔걸이에 걸려있는 칫솔이 한 개, 실내화가 한 쌍, 머그컵도 한 개, 국가대표 유니폼도 23번 최종수라 적혀있는 한 벌 뿐이었다. 최종수는 곧바로 침대를 향했고, 짐을 풀 생각도 하지 않은 채 그대로 누워버렸다. 박병찬이 존재하지 않는 세계라니, 그런 게 있을 리가 없으니까. 그럴 리가 없으니까. 장난스러운 목소리도, 다정한 손짓도, 애정에 기반한 맞닿음도, 그 무엇도 존재하지 않았다. 자고 일어나면, 모든 것이 원래대로 돌아오겠지. 이런 기분 나쁜 꿈에서 벗어나겠지. 눈을 뜨면, 여느 때처럼 곁에 있어 주겠지. 최종수의 눈꺼풀이 내려앉고, 의식도 그에 맞춰 가라 앉았다.

 

 

몽롱한 의식 너머로 목소리가 닿았다. …수야, …른 일어… 흐릿하게 들리는 목소리는 분명 익숙한 것임에도, 어쩐지 이상할 정도로 현실감이 들지 않았다. 당연하잖아. 네가 없었는데. 촉. 하는 소리와 함께 얼굴에서 촉감이 느껴졌다. 그리고 다시금 들려오는목소리는 이전과는 달리 선명했다. 얼른 일어나. 어젯밤 고생은 내가 했는데 왜 네가 못 일어나는 거야.

무거운 눈꺼풀을 들어 올리자, 흐릿한 시야로 누군가의 얼굴이 보였다. 천천히 눈을 두어 번 깜빡이자, 흐릿하던 시야가 점차 선명해졌다. 꿈,이었나. 작게 중얼거리는 소리에 마주 보며 누워있던 박병찬의 표정이 어리둥절해졌다. 박병찬과 동거하기 시작한후로 자리 잡은 수면 습관이 있다면, 그건 그를 바디 필로우 마냥 껴안고 자게 되었다는 점이었다. 평소처럼 그의 허리를 감싸 안은 손을 들어 그의 뺨에 가져다 대었다. 손바닥 너머로 느껴지는 체온과 촉감이 선명했다. 무언가를 확인하듯 가만히 쓰다듬는 행동에 병찬은 미소 지으며 제 손을 들어, 볼을 감싼 손에 겹쳤다.

“왜?”

“기분 나쁜 꿈 꿨어…”

뭔데? 겹쳐 놓았던 손은 부슬부슬한 머리카락을 향했다. 천천히, 진득하고 다정하게 쓰다듬었다. 손가락 사이사이 파고드는 머리카락이 간지러웠다. 쓰다듬에 기분 좋게 골골거리는 고양이처럼 최종수는 천천히 숨을 내뱉었다.

“첫 올림픽 기억해?“

”형이 마지막에 슛 넣어서 종수 면제 시켜줬지.”

어, 그 때 맞아. 별말 없이 수긍하는 모습에 병찬은 씩 웃었다. 병찬은 이럴 때마다 서로에게 셀 수 없을 만큼 많은 시간이 흘렀음을 체감하곤 했다. 예전엔 이런 장난 하나하나에도 화내고 짜증냈는데. 귀여운 듯 병찬은 천천히 쓰다듬던 머리카락을 세게 부볐다. 부스스한 머리카락이 더 어수선해지자 최종수는 나지막하게 화를 냈다. 정신 없어, 그만 해. 응, 그래서?

”아니… 그날 꿈을 꿨는데 네가 없었어서…“

“보고 싶었어?”

병찬의 물음에 눈을 천천히 감았다가 뜬 종수는 눈을 마주했다. 아직 잠기운이 남아있었지만 예의 날카로운 눈이 병찬을 직시했다. 병찬 또한 피하지 않고 시선을 마주했다. …그랬던 거같아.

순순히 수긍하는 모습에 활짝 웃은 병찬은 종수의 머리를 끌어 가만히 그의 심장이 위치한 쪽으로 고개를 가져다 대었다. 종수의 귓가로 천천히, 규칙적으로, 심장이 뛰는 소리가 들렸다. 잠에 빠지듯 눈꺼풀을 내린 종수의 모습에 병찬은 가만 속삭였다. 들려? 최종수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온 몸에 힘을 빼고 기대었다. 들려, 이건 네가 세상에 존재하는 소리다.

 


*잔존(殘存) : 없어지지 아니하고 남아 있음

퇴고 추후에... 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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