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키워드 :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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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gm : Nell - Part 2
마틴 챌피는 운명을 믿지 않았다. 그는 운명이란 건 덧없는 믿음에 불과하다고 생각하곤 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런 그가 유일하게 믿는 운명이 있었다. 그건 전생에 그가 사랑했던 사람과 관련된 운명-정확하게 따지면 운명보다는 믿음에 가깝지만-이었다. 그는 찻잔 안 커피를 스푼으로 휘저으며 자신이 기억하고 있는 전생을 떠올리려 했다.
전생의 마틴 챌피는 상대의 모든 걸 읽을 수 있는 능력자로, 흔히 말하는 독심술사, 즉 마인드 리더(Mind reader)였다. 그에게는 재단의 부흥이라는 뚜렷한 목표가 있었다. 그런데 그가 그 목표를 달성하기도 전에 제 3차 능력자 전쟁이 발발했고, 전쟁의 끝 무렵에 그의 연인이 비참한 죽음을 맞이했다. 이것이 마틴이 기억하는 모든 것이었다. 그 이후에 그 자신이 어떻게 되었는지, 무엇을 했는지에 대해서는 그 무엇도 떠오르지 않았다.
마틴은 과거의 잔상들을 밀어내려는 듯, 커피를 휘젓고 있던 손을 멈추고 스푼을 내려놓았다. 길고 유려한 손가락으로 찻잔의 손잡이를 휘어잡고 천천히 커피의 깊은 맛을 음미하며 마시기 시작했다.
과거의 그가 사랑했던 사람도 그와 마찬가지로 능력자였다. 그의 이름은 히카르도 바레타로, 전 카모라 마피아의 카포레지메였고 벌레 능력자였다. 소속이 없던 그는 실상 과거의 마틴과 만날 방법이 거의 없었다. 그를 만나게 된 건 단순한 우연이 아니었다고 마틴은 종종 생각했다.
일이 있어 잠시 외출했던 그는 몰려드는 타인들의 생각으로 인한 두통 탓에 잠시 앉아서 쉬고 있었다. 사람이 몰려드는 광장 근처라 흘러들어오는 잡념에 마틴은 꽤나 괴로워하고 있었다. 그러던 도중, 묘하게 흥미가 동하는 내용의 생각이 그에게로 흘러들어왔다. 한 사람을 향한 깊은 애정과 증오, 좌절과 집착. 절대 한데 모을 수 없는 감정들이 단 한 사람만을 향하고 있었다. 몰려드는 잡념으로 인한 두통도 느끼지 못한 채 흥미를 느낀 마틴이 정신을 차렸을 땐, 이미 그 묘한 생각의 근원지에 다다른 상태였다. 초점이 흐린 자색의 눈동자는 영국의 흐린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고, 힘없이 늘어져 벽에 기대어 있던 그는 마틴이 근처에 있는 것도 모르는 것처럼 보였다. 마틴이 능력을 사용했을 때, 그는 그의 눈을 통해 복잡한 감정을 읽어낼 수 있었다. 그는 미소를 지으며 그에게 다가갔고, 그렇게 그와 만나게 되었다.
어떻게 그와 깊은 사이가 되었던 지에 대해선 기억이 없다. 몰려드는 묘한 안타까움에 마틴은 고개를 저으며 상념을 몰아내었다. 동시에 울리는 핸드폰을 집어 들고 가방을 챙겨 밖으로 나갔다.
"좋은 아침!"
"좋은 아침이에요."
언제나 인사를 해주는 건 이글이었다. 마틴도 언제나처럼 웃으며 인사를 받아주었다. 인사가 끝나기도 전에 까미유는 먼저 몸을 돌려 걸어 나갔다. 먼저 걸어가는 까미유를 향해 이글은 소리를 쳤다. 까미유! 천천히 가도 지각은 아니잖아!
"미안하지만 난 좀 바빠서."
그러니까 좀 일찍 일찍 나와. 까미유는 몸을 돌려 손가락으로 이글과 마틴을 가리키며 말했다. 마틴은 그런 까미유를 보면서 쓴웃음을 지었다. 여전한 이기주의자─.
우습게도 마틴은 이글과 까미유와 안면이 있었다. 그건 마틴이 능력자였던 전생에서였다. 전생의 기억이 있는 마틴에게 그들과의 만남은 당황스러웠으나, 그들에겐 전생의 기억이 전혀 없었다. 전생을 기억하는 건 마틴, 그 혼자였다. 재미있게도 이번 생에선 셋 모두 능력자만 아닐 뿐이지 대부분은 전생과 비슷했다. 외형이라던가, 성격이라던가, 행동가지라던가. 마틴은 그 모든 걸 보면서 묘한 향수에 젖기도 했었다. 그는 까미유나 이글을 제외한 현세로 환생한 과거의 사람들을 우연히 만난 적이 많았다. 물론 그들도 마찬가지로 전생을 기억하진 못했다. 마틴은 그런 것엔 딱히 신경 쓰지 않았다. 하지만 그가 유일하게 신경쓰고 있던 것은 그가 아직까지도 현세에서 그의 연인을 만나지 못했다는 것이었다. 그래서일까, 마틴은 운명이란 건 있을 수 없다고 단언하곤 했다.
까미유와 이글과는 달리 오늘은 전공수업 외엔 다른 수업이 없던 마틴은 점심시간까지 시간을 보낼 겸 잠시 도서관에 들렸다. 마틴은 다음 과제에 필요한 책을 대출하기 위해 책을 검색한 후 책이 있는 곳으로 찾아가고 있었다. 대출할 책이 꽤나 깊숙한 곳에 있다 보니, 마틴은 자기가 도서관이라는 숲속의 책장 사이사이를 지나가는 길 잃은 여행자 같다는 생각을 했다. 창가 근처에 다다르고 마틴은 필요한 책을 발견했다. 그 때, 근처에서 종이가 넘겨지는 소리가 들렸다. 처음에는 그저 누군가가 책을 훑어보거나 읽고 있다고 생각하고 무시하려고 했지만 묘하게 거슬리는 소리에 마틴은 저도 모르게 인상을 찌푸렸다. 마틴은 순간 자기 자신이 놀라웠다. 지금까지 그 소리가 거슬린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 소리에 호기심이 동한 마틴은 소리의 근원지를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소리의 근원지에는 오전의 눈부신 햇빛을 등지고 벽에 기댄 채 책장을 넘기며 독서에 열중하고 있는 한 남자가 있었다. 마틴은 왠지 모르게 익숙한 상황에 혼란스러웠다. 마틴은 그를 찬찬히 살펴보았다. 짙은 갈색의 머리칼과 햇빛 탓에 더욱 밝아 보이는 자색의 눈동자, 그리고 적당히 근육이 잡힌 몸까지.
마틴 챌피는 이 남자를 알고 있었다.
하얀색 이어폰 줄이 자연스럽게 흔들렸다. 음악을 듣고 있는 건지, 그는 마틴이 근처에서 보고 있다는 걸 모르는 듯 했다. 갑작스럽게 닥친 상황에 당황스러운 건 마틴 뿐이었다. 그가 자신을 알아보면 어쩌나 싶은 긴장감과 동시에 그를 드디어 만났다는 흥분감에 마틴은 그에게서 한시도 눈을 뗄 수가 없었다. 마틴과 마찬가지로 그 또한 여전했다. 햇빛을 받으면 밝아지는 갈 빛의 억세보이는 머리칼과 자수정이 연상되는 자색의 눈동자는 마틴에게 확신을 안겨주었다. 그가 히카르도 바레타라는 것을.
* 공백포함 : 2832자 / 공백미포 : 2149자
01
히카르도가 마지막 장을 넘기고 만족스럽게 책을 덮었을 때, 동시에 책에 아슬아슬하게 끼워져 있던 책갈피가 떨어졌다. 멍하니 떨어지는 것을 바라본 히카르도는 작게 한숨을 내쉬고 몸을 숙였을 때, 히카르도의 손이 책갈피에 닿기도 전에 누군가가 책갈피를 주었다. 히카르도는 멍하니 고개를 들어 당사자를 바라보았다. 눈부신 햇빛에 빛나는 금발과 미소가 굉장히 인상적이었다.
02
히카르도는 마지막 장을 넘기고 만족스럽게 책을 덮었다. 시간을 확인해보니 꽤 많은 시간이 지나있었다. 점심시간에 약속이 있었기에 몸을 일으켜 책을 본래 있던 자리에 꽂아둔 채 도서관 밖으로 나왔다. 미안하지만 조금만 더 기다려달라는 문자에 알았다는 답장을 보내려고 할 때, 누군가가 팔을 붙잡았다. 의아함에 놀라 뒤를 돌아보니 상기된 표정의 한 금발의 남자가 보였다. 히카르도는 한 쪽 귀에서 이어폰을 뺐다. 저기...
"가..갑자기 미안해요.."
"아... 아니에요.."
금발의 남자는 당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하고 발갛게 상기된 표정으로 자신을 올려다보았다. 경황이 없었다고 말하며 자신을 마틴 챌피라고 소개했다. 갑작스러운 자기소개에 히카르도는 적잖게 당혹스러웠지만 우선 상대방에게 예의를 갖추기 위해 자신은 히카르도 바레타라고 소개했다. 저기...
"그런데... 어쩐.. 일로.."
히카르도의 물음에 마틴은 자신이 너무 섣부른 행동을 했다는 걸 깨달았다. 이 '히카르도 바레타'는 전생을 기억하지 못했다. 마틴은 자신이 히카르도에게 굉장히 무례한 행동을 했다는 걸 깨달았다. 그에게서 히카르도 바레타라는 확답을 듣자, 마틴은 두근거림이 멈추지 않았다.
마틴바레 같지 않아서 내용을 좀 늘려볼랬다가 실패했습니다..
마틴바레 파주세여ㅠ_ㅠ
블케 미안해...ㅎ...나중엔 더 조은걸 써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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