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ide. Ricardo
갑자기 달려든 검은 인영 탓에 뭘 어쩔 새도 없이 뒤로 넘어지고 말았다. 반사적으로 눈을 질끈 감았을 때는 코끝을 아리는 진한 술 냄새와 동시에 풍겨오는 익숙한 체향에 저도 모르게 전신에 힘이 빠져버렸다. 그리고 눈을 떠 그 인영과 눈을 마주쳤다. 자동 센서로 불이 켜진 탓에 역광으로 인영의 얼굴이 어둡게 보였지만, 사실은 확인하지 않아도 이미 눈치 채고 있었다. 눈이 마주치자 그는 미소를 지었다. 의문을 품기도 전에 그는 점점 내게 다가왔다. 그리고 닿았다_.
닿자마자 그는 습관처럼 아랫입술을 이로 짓씹었다. 그리고 내 입술을 핥아오자 나는 다시 눈을 감고 작게 입술을 벌렸다. 그는 기다렸다는 듯, 그 틈새 사이를 비집고 침범해왔다. 치열을 훑고 입천장을, 뺨을 쓸어내렸다. 매번 어색한 감각 탓인지, 진한 키스 탓에 느껴지는 술 냄새 때문인 건지 저절로 미간이 찌푸려졌다. 입 안 가득히 느껴지는 알코올은 미약하지만 취기가 담겨있어, 나도 모르는 사이 취해버릴 것만 같았다. 그는 마지막으로 내 입술을 핥으면서 와이셔츠의 윗단추를 풀어내려갔다. 몰려오는 수치심에 반사적으로 팔로 눈가를 가렸다. 그와 동시에 목 주변에서 통증이 느껴졌다. 비명을 지를 새도 없이 그는 그 부위를 핥아 내렸고 이내 내 팔을 치워냈다. 그리고 이마에 키스해왔다. 히카르도.. 이마에서 느껴지는 감촉에 몸이 떨렸다. 그는 내 반응에 아랑곳하지 않고 말을 이었다.
너를─죽이고 싶어.
죽어있지만 살아있는 것만 같은, 그런 너를 가지고 싶어. 히카르도.
아무렇지도 않게 그는 오늘 해야 할 일을 이야기하는 듯 한 덤덤한 어투로 말했다. 갑작스러운 그의 발언에 당황한 나머지 반사적으로 몸이 굳었다. 내가 알고 있는 까미유 데샹이라면─ 충분히 실현시킬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뇌를 지배하자 쉽사리 긴장이 풀리질 않았다. 오히려 그의 손길 하나하나에 더더욱 민감하게 반응하게 된다. 내가 인식하고 있는 그는, 목적을 위해서 상대의 목숨 따위 금방 사그라지게 만들 남자였다. 긴장 때문인지, 알 수 없는 그의 목적에 대한 두려움 때문인지 식은땀이 났다. 벌벌 떠는 나를 바라보며 그는 내 볼을 쓰다듬었고 미소를 지었다.
"히카르도, 나는 증거를 가지고 싶어. 너를 소유했다는 증거를."
단어 하나하나는 뇌에 박혔지만 그가 무슨 의미로 그런 말을 하는 지에 대해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그의 생각은 그가 항상 끼고 다니는 썬글라스의 짙은 렌즈마냥 불투명했다. 내가 머뭇거리는 걸 눈치 챘는지 그는 미소로 답해왔다. 플라스티네이션.
"뭐?"
"플라스티네이션. 시체 해부에 주로 쓰이는 약물이지. 죽은 너의 모습을 그대로 보존시킬 거니까."
소름끼칠 정도로 무서운 이야기였다. 그는 언제든 나를 죽일 수 있다는 듯이 그런 엄청난 이야기를 아무렇지도 않게 이야기했다. 두려움에 닫힌 입술은 열릴 시도조차 하질 못했다. 그는 쓰다듬던 손을 내려 내 입술을 문지르며 말을 이었다.
혈색 없는 너에게 내 피로서 겉으로나마 살아있어보이게끔 네 입술에, 전신을 칠할 거야. 그리고 나는 네 피로 내 전신을 물들일 거야.
그는 입술을 문지르던 엄지손가락으로 내 턱을 밀어 올렸다. 그리고 목덜미 근처에서 더운 숨결이 느껴졌다. 사고가 정지했다.
어때? 상상만으로도 즐겁지 않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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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 산으로 가는 완결~
제 안의 데샹은 미친놈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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