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4살의 까미유 14살의 히카르도 / 패러렐
"잘 잤어? 히카르도?"
어두운 방 안을 울리는 나긋나긋한 목소리에 반응하듯, 침대 위 모포가 움직였다. 곧이어 피곤함을 감추지 못한 자색의 눈동자가 목소리의 근원지를 찾아 이리저리 움직였고 그 시선은 문에 기대어 서 있는 하얀 남자에게 닿았다. 히카르도는 이내 침대에서 벗어나 그에게 다가갔다. ─까미유.
까미유는 자신에게 안겨오는 작은 아이를 떼어내고는 미소지었다. 자, 아침 먹어야지. 그렇게 말한 그는 몸을 돌려 문을 열었다. 히카르도는 재빨리 그의 하얀 가운의 끄트머리를 붙잡았다. 붙잡히는 느낌에 까미유는 고개를 돌려 히카르도를 내려다보았다. 짙은 썬글라스의 렌즈 탓에 그가 어떤 표정을 짓고 있는 지 보이지 않았고 히카르도는 자신의 대담함에 숨을 들이켰다. 까미유는 가운을 붙잡고 있는 히카르도의 손등은 쳐내듯 떨어뜨리고 앞장서 걸어갔다. 그리고 몇 발자국 정도 거리가 벌어지자 그는 고개를 돌려 냉소했다. 말했을텐데, 히카르도. 난 네 어리광을 받아주려고 같이 있는 게 아니야. 물론 넌 내게 있어 중요한 샘플이지만 그렇다고 내가 네 모든 걸 받아줄 거라는 착각은 꿈도 꾸지 않는게 좋아. 말을 마친 까미유는 미련없이 다시 걸어나갔고 히카르도는 망연자실한 표정을 지으며 뒤늦게 천천히 그의 뒤를 따랐다.
식기가 달그락거리는 소음 이외에 소리는 들리지 않는 둘만의 식사였다. 식사시간 내내 히카르도는 힐끗거리며 까미유의 눈치를 살폈고 때마침 식사가 끝난 까미유가 수저를 내려놓자 히카르도는 조심스럽게 그를 불렀다.
"까미유…저.. 피에르는 어딨어…?"
피에르? 까미유는 그에게 시선을 맞추고 찬찬히 뜯어보기 시작했다. 불안한 듯 떨리는 자색 눈동자가 그의 눈에 띄었다. 그러고보니 그 아이는 히카르도의 자색 눈동자를 좋아했지. 까미유가 생각에 빠진 그 짧지만 기나긴 침묵동안 더이상 말하지 않는 까미유의 태도에 히카르도는 실망한 표정을 감추지 못하고 고개를 푹 숙였다. 히카르도의 체념한 듯한 태도를 보고나서야 까미유는 입을 열었다.
"기억하지? 피에르는 실험을 받으러 갔었잖아"
갑자기 들려오는 차가운 목소리에 히카르도는 움찔거리며 실험이라는 말에 저도 모르게 몸을 떨었다. 히카르도의 떨리는 전신 탓에 쥐고 있던 수저가 달그락거리며 큰 소음을 내기 시작했다. 히카르도는 떨림을 멈추지 못했고 소음을 없애려는 듯 반대쪽 손으로 수저를 쥔 손을 말아쥐었다. 멍청하게 짝이 없는 그 행동에 까미유는 인상을 쓰고 그의 손에서 수저를 빼앗아 빈 그릇 위에 올렸다. 히카르도.
"오늘 너도 그 실험을 받을거야."
까미유의 심기를 건드렸다는 걸 눈치챘는지 히카르도는 고개를 숙인 자세 그대로 온 몸을 두 팔로 감싸안았다. 흡사 보호하는 듯한 그의 행동에 까미유는 진심으로 그를 비웃었다. 어차피 그에게 결정권 같은 건 없었다. 그는 실험에서 성공을 이끌어 내야 할 최상의 실험체다. 수많은 실험 끝에 그가 능력자 임을 밝혀냈고 그의 능력은 까미유의 앞날에 등불이 되어줄 것임에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그렇기에 까미유는 히카르도 바레타라는 최상의 실험체에게 많은 시간과 공을 들였다. 그리고 히카르도의 능력에 자신의 연구가 더해진다. 까미유 데샹에게 있어 최고의 시나리오였다.
까미유가 히카르도를 발견한 건 우연에 가까웠다. 길거리에 버려진 아이였다. 까미유가 히카르도를 처음 발견했을 당시, 히카르도는 벌레들에서 먹혔다는 말이 어울릴 정도였다. 까미유는 그의 벌새로 하여금 그를 벌레 무리에서 빼내고 그를 데려와 능력을 운용하는 방법을 가르쳤다. 그러던 중 까미유는 히카르도와 공생하는 흡혈충이 신체강화에 특화되었음을 깨닫고 그의 흡혈충을 더더욱 강화시키는 것에 많은 실험을 행해왔다. 사실 히카르도와 피에르 외에 세 명의 아이들이 더 있었는데 그 아이들은 히카르도 바레타를 더욱 완벽한 능력자로 만드는 연구 외에 까미유가 원래 계획했던 비능력자를 능력자로 만드는 실험의 대상자였다. 그 실험 샘플은 히카르도나 까미유의 벌레로, 샘플과 지원은 충분했다. 하지만 그렇게 수고한 노력에 비해 결과는 상당히 불만족스러웠다. 까미유는 밀려오는 상념들을 빠르게 밀어내고 떨고 있는 히카르도에게 손을 내밀었다. 갑작스럽게 손을 내밀어오는 까미유의 행동에 당황한 히카르도는 놀란 듯 고개를 들어 그를 바라보았다. 그에 조소하던 까미유가 입을 열었다. 자, 리키. 가자. 피에르가 궁금한거잖아? 히카르도는 그의 말에 머뭇거리며 그의 손 위에 조심스럽게 자신의 손을 올렸고 까미유는 수많은 실험 탓에 푸르스름하게 변한 그의 손을 보더니 이내 붙잡고 일으켰다. 리키, 넌 특별하니까, 그깟 쓰레기들처럼 되면 곤란해. 까미유의 미소가 더욱 짙어졌다.
자, 여기야. 히카르도를 이끌고 들어온 연구실의 실험대 위에는 벌레로 득실거렸다. 히카르도는 저도 모르게 그의 등 뒤에 숨었다. 까미유는 그런 히카르도의 행동을 소리없이 비웃으며 말을 이었다. 왜 그래? 보고 싶어했잖아. 봐, 저 머리색, 피에르잖아? 까미유의 말대로 피에르의 머리색이었지만 그라고 확인할 것은 그것 하나 뿐이었다. 머리카락부터 발 끝까지 전신에 벌레가 득실거려 징그럽다 못해 혐오스러울 정도였다. 히카르도는 충격적인 광경에 놀란 것인지 전신의 떨림이 멈췄다. 까미유는 자신을 올려다보는 자색 눈동자에 힐끗 시선을 주더니 이내 팔짱을 끼고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정면을 응시했다. 거절당한 시선은 다시 잔혹한 장면으로 향했다. 까미유는 그런 히카르도를 보더니 이내 무릎을 굽혀 눈을 마주했다.
"걱정마, 히카르도. 넌 실패만 했던 저 아이들보다 훨씬 가치있고 유능해. 넌 절대 죽을 수 없어."
비아냥거리는 듯한 그의 어투에 히카르도는 또다시 습관적으로 고개를 숙여 시선을 피했다. 까미유는 어깨를 으쓱거리더니 그의 어깨를 붙잡아 시선을 다시 마주했다. 초조한 자색 눈동자에 까미유는 미소를 지었다. 날 믿지? 리키? 까미유의 말에 히카르도는 머뭇거리며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만족스러운 듯 까미유는 그의 거친 머리카락을 흐트러뜨리며 웃었다.
"내가 죽어도 된다고 하기 전에 죽어선 곤란해"
저 아이들의 희생을 헛되게 할 수는 없잖아? 그렇게 말한 그는 실험실 탁자 위에 놓여있는 병을 흔들었다. 출렁이는 짙은 붉은색의 꼭 피와 같은 액체였다. 까미유가 그 액체를 주사기에 넣는 동안 히카르도는 천천히 셔츠의 소맷자락을 올렸다. 소맷자락이 올라가면 갈 수록 피부의 푸르스름함이 더욱 눈에 잘 띄였고 팔꿈치 부분까지 올리자 푸른색과 살색의 경계가 드러났다. 까미유는 수많은 실험 탓에 푸르다못해 거뭇거뭇해진 부위에 미련없이 알코올을 부었다. 갑자기 느껴지는 알코올의 한기 탓인지, 단지 실험의 부작용에 대한 두려움 때문인지 히카르도는 떨고 있었다. 까미유는 히카르도의 이마에 입술을 눌렀다. 갑작스러운 스킨쉽에 히카르도는 얼굴을 붉힌 채 눈을 감았다. 입꼬리를 비틀어 올린 까미유는 눈을 휘며 웃었다. Arrivederci.
말이 끝나기 무섭게 까미유는 미련없이 주사바늘을 그의 동맥부분에 찔러넣었고 액이 주입되어감과 동시에 히카르도의 맥박이 서서히 멈춰갔다. 까미유는 쓰러진 히카르도를 들어올려 실험대 위에 눕혔다. 그리고 아무렇지도 않은 듯 의자를 끌여당겨 옆에 앉아 그의 머리카락을 쓸어내렸다.
Bella Morte.
* 공백포함 : 3511자 / 공백미포 : 2715자
* Arrivederci ; 안녕
** Bella Morte ; 아름다운 죽음
무려 네 달만에 글을 썼네요.. 설정은 위에 살짝 적었지만 24살의 까미유와 14살의 히카르도를 생각하면서 썼습니다.
실험으로써 히카르도의 능력이 개화한다는 그런 글을 쓰고 싶었는데 보시다시피 망했네요. 어질어질..
글은 써야 느는데 너무 오랜만이라 쓰는 저도 이렇게 어색한데.. 보는 여러분들은 더 어색하시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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