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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혁독자 / D-day
전독시

중혁독자 / D-day

전지적 독자 시점 / 원작 기반 날조 있음.

 

bgm. 요네즈켄시 - lemon 

 

중혁독자

김독자는 오늘이 몇 월 며칠인지, 무슨 요일인지, 마지막으로 탔던 불광행 지하철을 타고 며칠이 지났는지 모두 잊었다. 불광행 지하철을 탔던 날짜만큼은 기억할 수 있었다. 정확하게는 알 수 있었다. 김독자는 습관처럼 코트 주머니에 손을 집어넣어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렸다. 

멸망한 세상에서 살아남는 방법. 현실은 정말 그 소설의 제목처럼 되어버렸다. 김독자는 스마트폰을 꺼내지만 날짜를 확인하지 않았다. 이 세상에서는 날짜나 시간이 그다지 의미가 없다. 그는 이미 이 변화한 세상에 녹아들어 갔다.

"김독자."

점차 걸음이 비적비적 느려지자, 매력적인 중저음의 목소리가 김독자의 이성을 깨웠다. 퍼뜩 고개를 들자, 불만스러운 듯 찌푸려진 아미와 깊고 속을 헤아리기 힘든 짙고 검은 눈과 맞 부딪혔다. 어색하게 웃으며 김독자는 발걸음을 재촉했다. 제 옆으로 와서는 천연덕스럽게 웃으며 앞서가는 김독자의 모습에 유중혁은 의심스러운 시선을 보냈다.

 

"중혁아, 이거 봐. 탁상달력이다?"

폐허가 된 건물 내의 어느 한 사무실 안에서, 유일하게 그나마 멀쩡해 보이는 탁상달력이 놓여있었다. 건물이 부서지고 창문이 깨지고 유입된 바람 탓인지, 바닥에 눕혀져 있었다. 달력은 되게 오랜만에 보는 거 같네... 지나가듯 혼잣말을 하며 김독자는 달력을 주워들며, 손으로 달력을 탈탈 털어냈다. 먼지인지 가루인지, 정체 모를 무언가들이 그의 주위를 맴돌았다.

이렇게 멀쩡한 달력이라니... 왠지 신의 장난 같네. 한 손으로는 달력을 집어 들고 바라보며 무의식적으로 김독자는 다른 손으로는 주머니 속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렸다. 그리고 유중혁은 그런 김독자를 바라보고 있었다.

"중혁아. 우리 오늘부터 날짜를 셀까?"

뜬금없는 김독자의 말에 유중혁은 무슨 쓸데없는 소리냐며 김독자를 바라보자, 김독자는 실실 웃기 시작했다. 중혁아, 오늘이 몇 월 며칠인지 기억해?

"모른다."

"왜?"

답지 않게 입을 다무는 유중혁의 모습에 김독자 또한 입을 다물었다. 사실 전지적 독자 시점을 사용하지 않아도, 왜 유중혁이 날짜를 세지 않는지는 알 수 있었다. 무의미했기 때문이다. 어차피 유중혁에게 있어, 삶이란 ■■을 보기 전까지 날짜란 의미가 없었다. 그에게는 그저 몇 번째 회귀라는 숫자만이 남아있다. 멸망한 세상에서의 날짜란 의미를 소멸했다. 김독자는 유중혁의 손에 달력을 쥐여주었다. 중혁아.

"우리 같이 새해를 볼까."

오늘부터 같이 날을 세자. 그래서 한 달 후에 같이 새해를 맞는 거야.

어차피 이 세상에서 그 누구도 우리에게 날짜를 정해주지 않으니까.

 

 

 


 

 

D-??

김독자가 사라졌다.

 

 

 

D-??

3년 후,

김독자가 나타났다.

 

 


 

 

 

김독자.

부름에 응답하듯 앞서 걸어가던 김독자의 고개가 뒤로 돌아갔다. 오늘은 둘이 공단을 둘러보는 날이었다.

"왜? 중혁아?"

"이 달력, 언제 발견했는지 기억하나?"

유중혁이 들고 있는 탁상달력은 3년 전 처음 발견했을 때와 마찬가지로 12월, 한 해의 마지막을 알리고 있었다. 그리고 김독자는 질문에 대한 답을 알고 있었다. 정확하게는 유중혁이 말하려는 바를 어렴풋이 알 수 있었다. 분명, 그때 자신의 입으로 말했다. 12월 1일로 하자고. 한 달 후에 새해를 맞자고.

김독자가 달력을 발견한 날을 12월 1일이라고 정한 건, 그다지 큰 의미는 없었다. 그저 발견 당시 달력이 12월이었을 뿐이었다. 애초에 그들은 모두 '날짜'와 '요일'을 잃어버렸다. 그때도, 지금도 그들에게 날짜는 중요하지 않았다.

"지금은 새벽녘이고, 해가 뜨면 오늘은 네가 말한 새해다."

김독자는 유중혁의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그때의 한 달은 지난 지 이미 오래였다. 어리둥절한 김독자의 표정에도 유중혁은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유중혁은 저를 바라보는 김독자의 옆에 섰다. 3년이라는 시간 동안 아이러니하게도 김독자는 3년 전 그대로의 모습이었다. 혼자만 시간의 여파를 받지 못한 모습이었다. 유중혁이 28살에서 31살이 될 때까지, 김독자는 28살에 멈춰있다. 그렇기에 유중혁의 시계 또한 28살의 3년 전의 그 때로 멈춰있다. 유중혁은 달력에서 12월의 어느 날을 가리켰다. 

"네가 사라졌던 날은 이 날이었다."

그리고 네가 돌아온 날은 이 날이다. 유중혁은 그 날짜에서 바로 다음 날을 가리켰다. 그리고 유중혁은 길고 죽 뻗은, 그렇지만 흉터와 굳은살이 배겨있는 검지로 날짜를 주르륵 훑었다. 그리고 12월의 마지막 날, 31일에 멈추었다.

"그리고 어제는 12월의 마지막 날이었다."

유중혁은 12월을 뜯어냈다. 그리고 뜯어낸 그 종이를 바람에 흘려보냈다. 날아가는 종이를 보는 김독자의 눈에 어스름하게 하늘에 빛이 들어왔다. 새벽 여명이 밝아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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