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혁독자 / 2월 15일
전지적 독자 시점 / 시나리오가 끝난 후 평화로운 일상
* 2월 15일 김독자 생일 축하해!! #2월의기적_김독자_생일축하해
♪ Nakagawa Shoko - God knows
중혁독자 / 2월 15일
김독자는 눈을 찌르는 햇빛을 견디지 못하고 몸을 일으켰다. 앓는 소리를 낸 그는 혼몽한 정신으로 자신의 주변을 이리저리 둘러보았다. 그리고 보이지 않는 인형에 고개를 갸웃했다. 그리고 습관적으로 탁자 위의 핸드폰을 켜, 시간을 확인했다. AM 09:36. 평소보다 늦은 기상이었다.
김독자는 슬리퍼를 질질 끌며 방문을 열자, 고소한 참기름 냄새를 맡았다. 냄새를 따라가니 주방에는 장신의 남자가 불 앞에 서 있었다. 인기척을 느낀 건지, 그의 시선은 김독자를 향했다. 눈이 마주치자 김독자는 눈을 휘며 웃었다. 중혁아.
"좋은 아침."
"그래."
무뚝뚝한 남자의 대답에도 김독자는 태연히 기지개를 쭉 피며 화장실로 향했다. 입안이 텁텁해서 어서 양치질을 하고 싶었다. 그리고 화장실에는 2개의 칫솔이 나란히 걸려있었다.
씻고 나온 김독자를 맞이한 것은, 다름 아닌 미역국이었다. 젖은 머리카락을 마른 수건으로 헤집으며 김독자는 자리에 앉았다. 평소와는 다른 호화로운 아침식사였다.
"자, 그럼 어디 한 번 먹어볼까."
김독자의 맞은 편에 앉은 유중혁도 수저를 들었다. 미역국 한 수저를 뜬 김독자는 수저를 입에 문 채 웅얼거렸다. ...맛있네. 역시. 김독자는 느리지만 맛을 음미하듯 천천히 한 숟갈씩 먹었다. 김독자보다 빠르게 식사를 끝마친 유중혁은 자리에서 일어나 식기를 치우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내 설거지를 하려는 듯, 빨간 고무장갑을 끼었다. 김독자는 입 안의 밥을 오물오물 씹으며 생각했다. 쟤는 왜 저래도 잘 생겼지..
"김독자, 식사 다 했으면 식기 가져와라."
"...응."
식기를 가져다 놓은 김독자는 남은 반찬들을 락앤락 통에 넣고 뚜껑을 닫아, 냉장고에 집어 넣었다. 비적비적 거실로 걸어간 김독자는 주머니에 핸드폰이 없음을 깨닫고 다시 침실로 들어가 충전 중이던 핸드폰을 충전기와 분리시켰다.
핸드폰을 들고 나오는 김독자와 동시에 설거지를 끝마쳤는지, 유중혁은 아까 김독자가 머리카락을 말리면서 쓴 수건으로 손을 닦고 빨래통에 던져놓고 거실로 나왔다. 둘은 별 다른 말 없이 거실 소파에 앉았다. 김독자는 자연스럽게 소파 위의 담요를 펼쳐 다리 위를 덮었다.
"그래서, 남은 시간 동안은 뭘 할 예정이지?"
유중혁의 물음에 김독자는 으으음, 하며 고심하는 소리를 내며 눈을 감았다. 생각하는 김독자를 보며 유중혁은 팔짱을 끼었다. 슬쩍 실눈을 뜬 김독자는 이내 중혁이를 따라 팔짱을 끼었다. 글쎄.. 쇼핑이라도 갈까?
"계획 없이 24시간을 보내자고 한거냐."
"아니.. 뭐..계획이 없다기보다는... 뭘 하고 싶냐고 물었을 때, 생각났던 게 애인이랑 하루종일 같이 보내는 거였어."
뭐, 내게는 특별한 날이잖아? 오늘은 내 생일이니까.
"저녁 약속은 7시니까.. 거의 6시간 정도 비네."
6시간이면 충분히 돌 수 있겠지? 안전벨트를 매는 김독자의 말에 유중혁은 고개를 끄덕였다. 시트를 이리저리 조정하던 유중혁을 보며 김독자는 네비게이션의 검색창에 손가락을 올렸다. 역시, 처음은 여기지?
김독자와 유중혁은 걸었다.
"이때 얼마나 놀랐던지.. 너는 3707칸이었던가?"
"그래."
"나는 3807칸이었는데."
멸살법이 현실이 되던, PM 07:00 불광행 지하철 3434호에서의 이야기였다. 그들은 지금 옥수역을 향해 동호대교 위를 걸어가고 있었다. 동호대교의 중간 즈음 건널 때, 김독자는 매서운 겨울 바람에 조금 움츠러들었다. 유중혁은 김독자를 멈춰세우고 목도리를 제대로 다시 묶어주었다. 그런 유중혁을 보며 김독자는 웃었다.
"여기서 우리 중혁이가 날 저 차디찬 바다로 빠뜨려버렸는데 말이지."
김독자의 놀리는 투의 말에 유중혁은 피식 웃었다. 목도리를 조금 세게 묶자, 김독자는 캑캑거리는 소리를 내며 재빠르게 매듭을 풀어냈다. 불퉁한 김독자의 표정에 유중혁은 조소했다.
"그러는 너는, 예언자라고 하지 않았나."
"그렇게 안하면, 네가 날 죽일 거였잖아."
"당연하다. 이전 회차와는 너무나도 달라진 상황들이었으니까."
"가차없네, 우리의 패왕님은."
그렇게 시덥잖은 과거의 일들을 이야기하며 동호대교를 건너 옥수역에 도착했다. 둘은 근처 브런치 카페에서 대충 늦은 점심을 먹고, 입가심으로 커피를 들이켰다. 이전에는 생각지도 못할 평화로운 날이었다.
"다음은, 여기. 거리가 꽤 되네."
길을 찾은 네비게이션의 안내가 시작되었다. 유중혁은 브레이크를 밟은 채, 기어를 드라이버(D)로 바꾸고 핸들을 틀어 주차장을 빠져나왔다. 멍하니 앉아 있던 김독자는 차창에 팔을 얹고 턱을 괴었다. 여기서 우리 중혁이랑 대판 싸우고... 여기서부터 깃발 쟁탈전 했었고... 여기 즈음에서 한수영을 만났던가...?
김독자의 상념을 방해하지 않으려는 것인지, 유중혁의 운전은 굉장히 부드러웠다.
"다들 평화롭네."
"그렇군."
다음 장소는 광화문이었다. 정확하게는 광화문 광장. 동호대교 때와 마찬가지로 차는 인근에 주차시키고 목적지까지 걸어갔다. 유중혁은 김독자의 손을 잡아끌어 본인의 검은색 코트 주머니에 넣었다. 잠깐 사이에 차가워진 손에 손가락 사이사이에 자신의 손가락을 끼어 손깍지를 끼었다.
횡단보도의 신호등이 빨간불이라 둘은 가만히 서서 초록불을 기다렸다. 차량들이 빠른 속도로 지나다니면서 날선 바람이 불어 머리카락이 제멋대로였다. 김독자는 깍지 낀 손이 아닌 빈 손으로 머리카락을 정돈했다. 그리고 깍지 낀 손을 당겨 유중혁의 키를 낮춰 그의 머리카락도 정돈했다. 그리고 때맞춰 신호등에 초록불이 들어왔다.
"가자."
"응."
왕이 없는 세계의 왕. 절대왕좌를 선택하지 않고 부수고 얻은 설화였다. 물론, 모든 시나리오가 끝난 지금 세상에는 흔적조차 남지 않았다. 그들은 드넓은 광화문 광장을 돌았다.
"여기서 우리 중혁이랑 왕좌 쟁탈전 했었지."
"제대로 싸웠으면 내가 이겼을 거다."
"선빵필승이라잖아."
싱긋 웃는 김독자의 얼굴에 유중혁은 허탈한 웃음을 지어보였다. 겨울이고 유난히 추운 날이라 그런지, 이 광활한 광장을 거니는 사람은 없었다. 그들은 천천히 서로의 과거를 곱씹었다. 같은 기억, 다른 감정.
"중혁아, 우린 세계를 구할 수 있다. 알지?"
유중혁은 조소했다. 그래.
찬찬히 둘러보다보니, 시간은 벌써 출발해야할 시간이 되었다. 오늘은 김독자의 생일을 맞아, 김독자컴퍼니의 모두가 모여 같이 저녁을 먹기로 했다. 퇴근시간과 겹쳐, 길이 막힐 지도 몰랐기에 그들은 예정보다 일찍 출발했다. 그렇지만 예기치 않게도 다리에서 접촉사고가 난 것인지, 더더욱 지체되어서 결국 그들은 오늘 모임의 주인공이면서 지각을 하고 말았다.
"독자 씨, 늦었어요."
신발을 벗고 들어오는 김독자의 등을 팡팡 때린 정희원이 웃었다. 김독자는 마주 웃으며 답했다. 미안해요. 퇴근 시간이라 길이 많이 막히더라구요. 뒤이어 주차를 마친 유중혁도 방에 들어왔다. 유중혁의 손에는 케이크로 추정되는 박스가 들려있었다.
"뭐야, 케이크를 생일 주인공이 사온 거야?"
"정확하겐 중혁이가 산 거야."
김독자의 대답에 고개를 끄덕인 유중혁은 식탁 위 비어있는 자리에 케이크를 올렸다. 그러자 길영이와 유승이가 박스를 열고 케이크를 꺼내 초를 하나하나 꽂기 시작했다.
"근데, 독자 아저씨 왜 초가 긴거 2개에 작은거 8개에요?"
우리 시나리오 깨면서 3년 정도 지났으니까 긴거 3개랑 작은거 1개가 맞지 않아요? 갸웃하는 유승이의 말에 길영이는 코웃음을 치며 독자 대신 대답했다.
"형이 28살이라면 28살인거야."
"하하, 아니.. 나는 3년 동안 없었으니까.. 나이 세기가 애매하더라고."
다들 쓴웃음을 지으며 말하는 김독자를 바라보더니 이내 빨리 촛불 불고 식사하자며 김독자를 다그쳤다. 정희원과 이현성이 성냥에 불을 붙여 10개의 초에 하나하나 불을 붙여갔다. 모든 초에 불이 붙자, 유승이와 길영이의 선창으로 생일 축하 노래가 가게를 울렸다.
"생일 축하해요!"
기분 좋은 날에는 술이 빠지지 않았다. 운전을 해야 하는 유중혁과 이지혜, 신유승, 이길영을 제외한 나머지 사람들은 다들 자리가 파할 때 쯤에는 거나하게 취해 있었다. 힘들었던 모든 시나리오가 끝이 나고 각자가 그들의 삶을 사느라, 사실상 이런 행사가 아니면 만나기 힘들었다.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얼굴을 발갛게 물들인 김독자는 결국 유중혁에게 업혀서 차에 태워졌다. 유중혁은 흐느적 거리는 김독자를 겨우 앉히고 안전벨트를 매고, 시트를 뒤로 밀어 편하게 앉게 등받이도 뒤로 젖혀주었다. 편안한 자세가 되자, 김독자는 고른 숨소리를 내뱉으며 잠에 빠져들었다.
김독자가 그나마 정신을 차렸던 것은, 몸을 갑갑하게 하던 안전벨트가 풀리고 업히라는 유중혁의 목소리였다. 술에 취해 비틀거리는 김독자를 붙잡고 어찌저찌 업은 유중혁은 차 문을 잠그고 엘레베이터를 타고 집으로 향했다. 그리고 익숙한 듯, 비밀번호를 누르고 집 안으로 들어왔다. 유중혁은 김독자를 현관에 앉히고 신발을 벗겨주었다. 몸을 제대로 가누질 못하는 김독자 탓에 유중혁은 한숨을 내쉬었다.
"김독자."
"으응, 중혁아아"
"잡아줄테니 일어나라. 옷도 갈아입어야 하고, 씻어야 한다."
유중혁은 김독자를 잡아 일으켜 침실로 향했다. 침실에는 오전에 김독자가 벗어놓은 잠옷이 그대로 있었다. 유중혁은 침대에 김독자를 앉히고 코트를 벗겨냈다. 유중혁이 코트를 걸어놓으러 간 사이 김독자는 혼몽한 정신으로 셔츠 단추를 하나하나 천천히 풀어내려갔다.
유중혁이 코트를 걸고 오자, 김독자는 셔츠를 풀어해친 채 침대에 드러누워있었다. 유중혁은 익숙하게 셔츠를 벗겨내고 잠옷을 입혔다.
"김독자, 양치질은 해야 한다."
일으키는 힘에 김독자는 마지못해 억지로 일으켜져 화장실로 향했다. 피곤한 지 꾸벅꾸벅 고개를 떨구는 김독자 탓에 유중혁은 먼저 세수부터 시켰다. 세수를 하고 나니 정신이 좀 드는 지, 김독자는 치약이 짜진 칫솔을 받아들고 칫솔질을 시작했다. 유중혁은 김독자 뒤에서 허리를 끌어안아 고정시키고 본인도 양치질을 시작했다.
씻고 나온 그들은 침실의 무드등을 제외한 나머지 불을 끄고 나란히 침대에 누웠다. 유중혁은 탁자 위에 본인의 핸드폰과 김독자의 핸드폰에 각각 충전기를 꽂고 켜져있던 무드등 마저 꺼버렸다. 사위는 어둠으로 물들었다.
"이제 곧 있으면 자정이다."
"응..."
"어땠지?"
"오늘?"
김독자는 웃었다. 행복해.
독자야 생일 축하해♡ 행복하자♡
퇴고는 자고 일어나서 할게요ㅠㅠ)9...너무 피곤해서 퇴고까진 못하겠네요ㅠㅠ
'전독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썰 백업1 (0) | 2021.06.24 |
---|---|
중혁독자 / 기다림의 끝 (0) | 2021.06.24 |
중혁독자 / 당신의 ■■ (0) | 2021.06.24 |
중혁독자 / 여름의 시기 (0) | 2021.06.24 |
중혁독자 / D-day (0) | 2021.06.24 |